서울에서는,
자기차를 운전하고 다니는 외국인을 볼수가 없다.
그 대답은, 선진국에 가서 차를 빌려타고 여행해보면 알게된다.
문명-文明 으로서의 자동차는 함께 가지고 있지만 그 차를 운용하는
운전질서, 교통질서인 문화-文化에서 큰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한쪽이 교통질서가 이미 자리잡고 있다면 다른한쪽은 아직 정글의 수준이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자신있게 운전할수 있는 사람도 카이로에서는 운전할수 없다.
거긴 더 원시적인 정글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남북을 관통하는 영국의 고속도로 에서는 외국인인 초보운전자도
안심하고 자동차를 운전할수 있다.
끼어들기, 과속, 무모한 앞지르기등의 난폭운전이 없기 때문이다.
120키로의 속도지만 모두가 물 흐르듯이 정연하고 차분하게 운전하고 있다.
모든 도로에서 그렇다.
이건 남에게서 들은 얘기가 아니라 내가 직접체험한 일이다.
랜트카로 영국을 일주한후 내린 결론이 그것이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것일까.
선진국의 자동차문화는 이미 3.5세대다.
우리는 지금 1.5세대를 겨우 넘기는 중이다.
자동차라는 문명이 등장한 이후 그들은 100년이 넘는 긴 시간동안 온갖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오늘의 운전질서-교통문화를 일구어왔다.
반면 우리는 걸어다니던 사람들이 겨우 버스라는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던
세대가 갑자기 자가용승용차를 가지게 됐다.
내가 초등학생 이었을때,
우리집에는 엄친의 일본제 커다란 자전거가 있었다.
그때는 자전거가 있는집도 드물었다.
중, 고등학교 시절엔 그게 어디든 걸어서 다녔다.
대학생이 되어 전차와 기차를 이용했으며 그때 시내버스가 등장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간 후에는 회사가 제공하는 통근버스를 이용했다.
과장이 되었을때 처음으로 일제의 ‘브리사’ 승용차를 구입했다.
그게 1974년.
지금 우리집 승용차는 그후 7번째 바뀐것이다.
영국은 모든차량이 좌측통행하고, 운전석은 오른쪽이다.
때문에 변속레버는 왼손으로 조작해야 한다.
영국에 가서 운전해야하는 우리들 에게는 대단히 불편하고 위험하기까지 한
일이다.
그러나 그런 시스템에는 영국의 오래된 교통문화의 시대적 전통이 배어있다.
그들에게는 자동차 이전 ‘마차’ 라는 운송수단이 있었으며 그게 대중교통수단
이었다.
마부는 오른쪽에 앉아 말들을 부렸으며 특히 오른손에 긴 채찍을 들고 휘둘렀다.
자나다니는 행인들에게 피해를 주지않기 위해 마차는 좌측통행을 했다.
그 전통이 그대로 자동차에 남은것이 지금의 영국교통체계다.
일본이 그 흉내를 내고있는것은 가소로운 일이다.
미국에 비해 유럽의 길들은 좁은편이다.
마차들이 다니던 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럽은 작은차 생산에 앞설수 있었으며 산악지대의 좁은도로를 달릴수 있는
뛰어난 성능의 엔진과 유선형의 차체개발에 앞설수밖에 없었다.
디자인, 크기, 성능, 연비에서 미국을 앞서는 자동차문화가 만들어진 배경이
그것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그런 문화적 전통이 없기 때문에 일대 혼란을 겪고있는 것이다.
내년 11월이면 우리나라에서 G20 정상회의가 열린다.
단군이래 최대규모의 ‘국제회의’ 다.
겪어보면 알겠지만 88올림픽에 비견할만한 ‘계기’ 가 될수있다.
그래서 벌써부터 나라의 품격을 업 그레이드 해야 한다는 얘기들이 나오고있다.
한 가정도 큰일을 치르려면 치밀한 준비가 있어야 하고 과정마다 여러 가지 고비를
겪으면서 행사가 끝났을때는 상당한 ‘발전’ 이 있었음을 실감할수 있다.
나라도 마찬가지다.
벌써 정부차원의 준비는 시작되었을 것이다.
20개의 선진국 정상들이 한자리에 모인다는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다.
따라오는 사람들, 그들에게 제공해야하는 숙박시설들, 회의장, 정상회의 세련된
진행, 의제의 선택과 결실등,
G20은 대한민국이 얻어낸 최고의 국제적 ‘찬스’ 라고 할수있다.
대내적 으로도, 대외적 으로도 그것은 놀라운 기회가 될수있다.
그래서 지금의 우리수준을 되 돌아볼 현실적인 필요가 있다.
1960-70 년대를 ‘압축성장의 시기’ 라고 부른다.
특히 나는 개인적으로 이 기간동안 철강회사에 근무하면서 그 소용돌이를 몸으로
체험한 세대다.
고생도 자심했지만 보람도 그만큼 컸던, 한국이 경제적으로 웅비하는 기간이기도
했다.
압축성장이 무엇인가.
압축(壓縮)은 압력을 주어 부피를 줄이는것이며, 문장을 줄여 짧게하는 것이다.
따라서 압축성장은,
필요한 만큼의 여러과정들을 생략한채 건더뛴, 빠른성장을 의미한다.
세상에 공짜가 없는것은,
지금 우리사회가 겪고있는 온갖 혼란은 뒤늦게 그 건너뛰었던 과정들을 채우느라
지불하는 대가라고 봐야한다.
두발로 걸어다니던 사람들이 ‘마차’ 라는 과정없이 자동차를 탄게 그런것이다.
나쁘다는게 아니라 ‘부족’ 했다는 뜻이다.
필요한 단계가 생략됐다면 지금 그 단계들을 다시 밟느라고 일대 혼란과 진통을
겪고 있는것이다.
압축성장은,
반드시 그에 따르는 후유증(後遺症)을 남긴다.
후유증은, 어떤 일을 치르고 난 뒤에 생긴 여러 가지 부작용을 이르는 말이며,
부작용(副作用)은 어떤 약이라 해도 병을 낫게하는 작용에 곁들여 해로운
작용도 나타나는 것이다.
예를들어 진통제가 식욕부진을 일으키는게 그런것이다.
부작용은 어떤일에 곁들여 일어나는 바람직하지 못한일에 대해서도 쓰이는말이다.
쉽게말해,
압축성장은 성장후의 결과에서 부작용이 있다는 뜻이다.
모든과정을 제대로 다 거친 성장은 그 결과가 안정적이고 효율적이다.
그러나 압축성장은 물량이 내용을 앞서기 때문에 문화적 부작용을 낳게된다.
문명이 문화로 자리매김 하지 못하는 현상이 그것이다.
우리사회의 온갖 ‘상스러움-천박함’ 이 바로 그 핵심적인 내용들이다.
대표적인 것이 졸부들의 ‘천민자본주의’ 임은 말할것도 없다.
모든 선진문명국들은 전통적으로 그것을 떠 받치고있는 세 개의 큰 기둥을 가지고
있다.
곧 정치에서의 자유민주주의와,
경제에서의 자본주의 시장경제,
그리고 사회공동체를 유지케 하는 법질서가 그것이다.
정치체제의 중요성은,
북쪽의 1인독재의 전체주의와 우리의 자유민주주의에서 이미 분명한 결판이 났다.
인간의 기본권이 유린된 체제가 발전할수는 없다.
선군정치(先軍政治)를 외치는 병영국가의 국민은 모두가 포로일 뿐이다.
우리는 이미 오래동안 충분히 그들의 신음소리를 듣고있다.
그래서 우리들이 누리는 자유와 풍요로움이 상대적으로 어떤것인지 체험적으로
알고있다.
미국의 의회조사국(CRS) 은,
2008년 북한의 수출이 28억불 이라고 밝혔다.
같은해 우리는 4,000억불, 비교자체가 무의미한 수준차다.
전체주의계획경제와 자본주의시장경제의 차이는 더 긴 설명이 필요없다.
아무리 반시장, 반기업, 반자본주의 정서가 있다해도 우리가 이만큼 잘살고 있는것은
자본주의시장경제를 채택한 결과인 것이다.
이승만의 ‘선택’이 존경받아야 하는 이유도 그것이다.
그러나 ‘법질서-준법정신’에서 우리는 낙제점이다.
불법, 편법이 판치는게 지금의 우리사회다.
입법부인 ‘국회’ 부터가 세계에서 가장 폭력적인 의회로 낙인찍혔다.
그들의 ‘무법천지’ 는 전국, 전국민을 크게 오염시켰다.
여기에 더해,
지난 반세기동안 압축성장과 투쟁적인 민주화과정을 거치면서 법질서 자체가
크게왜곡된 측면이 강하다.
정부주도의 압축성장을 거치면서 거기에 참여, 많은 이득을 보는 자들과
소외된 계층이 발생했으며,
법과 공권력이 그들의 편이라는 편견이 널리퍼졌다.
따라서 법을 지키지않고 오히려 그것을 공격하는것이 정의와 민주화 운동으로
포장되었으며 이로서 불법, 편법, 범법이 국민의 일상이 되고말았다.
특히 1980년대의 민주화운동은,
극단적인 좌파, 직업적인 운동권, 낙오한 노동자들이 주도했으며,
그뒤 친북좌파의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민주화와 인권문제는 이들이
‘독점’ 하는 불상사가 생겼다.
그들의 이념, 구호, 불법집단행동에 대해 비판하면 무조건 독재, 반인권,
반민주세력 으로 타도의 대상이 되었다.
참으로 무섭고 두려운 독선의 시절이었다.
이성(理性) 과 분별력(分別力), 그리고 제3의 생각이 설 자리가 없는 무지와
독단의 시대이기도 했다.
그 후유증이 지금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부작용을 낳아 일대 사회적인 혼란이
일어나고 있는것이다.
압축성장과 폭력적민주화운동은 그 상승작용으로 지금의 우리사회를 만인이
만인을 향해 쟁투하는 갈등하는 사회를 만들었다.
그동안 모든 대형시위와 집회에서,
공권력-경찰이 공격받은것은 법질서의 붕괴가 어느수준 인지를 알게해 줬다.
질서는 차례다.
그리고 법질서는 그 차례를 법으로 지키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긴 줄에 거침없이 새치기가 끼어들고,
공권력-경찰이 그 횡포를 막지 못한다면 그게 바로 ‘무법천지’ 다.
지금의 우리사회가 그 꼴이다.
개인의 가정이라해도 귀한 손님을 맞기위해서는 준비를 한다.
G20의 정상회의는 우리가 스스로를 돌아보고 우리 사회를 한단계 업 그레이드
시킬수 있는 절호의 주어진 기회다.
우선, 유권자의 힘으로 ‘무법,폭력 국회’ 를 엎어야 한다.
지금의 국회는 우리의 정치발전을 가로막고있는 커다란 거침돌일 뿐이다.
다음 총선에서 전부 새 사람을 뽑는것이 우선은 최선의 방법이다.
다음이 우리모두가 준법정신으로 ‘법질서’ 를 확실하게 세우는 일이다.
거의 평생을 가까이 지내고 있는 미국인 친구가 내게 한 말이있다.
그는 30년이상 한국에서 살았던 사람이기도 하다.
‘미국국민들이 법을 잘 지키는것은 사실이다.
확실히 한국사회보다는 법질서가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이 미국사람들이 한국사람들 보다 착하거나 더 정직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그건 착각이다.
착하고, 성실하고, 정(情) 많기로 말한다면 어떤 나라도 한국을 따라올수 없다.
차이는 단 한가지,
미국에서는 법을 어기면 그 처벌이 아주 가혹하다.
개인적으로 불이익이 크고, 경제적으로도 크게 손해가 되고, 신체적 으로도
부자유해 진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보면 한국은 법을 어겨도 처벌이 너무 느슨하다.
그러니 자꾸 법을 어기게 되는것이다.
손해도 별로 없는데 누가 그 불편한 법을 지키려고 하겠는가.‘
흉기를 들고 공권력-경찰을 공격하고도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나라에서 법질서
확립은 요원한 얘기다.
시민들에게 법을 지키라고 말하기 전에 법을 어겼을경우의 처벌부터 강화해야
하는 소이가 거기에 있다.
하나의 사회공동체가 모두가 편하게 사는길은 ‘법질서’ 를 세우는 길이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이다.
‘법’ 이 모두의 ‘약속’ 이라면 전체를 위해 약속-법을 어긴 범법자는 가혹하게
다뤄야 한다.
‘법’ 이 무서우면 ‘법질서’ 는 저절로 세워진다.
압축성장과 폭력적민주화운동의 후유증을 치유하는 길이 그 안에 있음을 이제는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