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드족(族)은, 터키와 이라크, 그리고 이란에 결쳐있는 쿠르디스탄 지역을 주요 거주지로 하는 오래된 종족이다. 대부분이 이슬람의 수니파인 쿠르드족은 인구에서는 2.500에서 3.000만명을 헤아리는 국가수준의 규모지만 아직까지 정부를 가지고 있지못한 피압박 부족 이기도 하다. 터키와 이라크, 이란은 그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쿠르드족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있으며 지금도 게릴라전과 함께 이를 토벌하려는 소규모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그 인구가 2.000만명이 넘는다면 하나의 국가가 성립되기에 충분한 숫자다. 그런데도 오랜역사를 통해 피압박부족이 된것은 ‘정치적 조직’ 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국가규모의 인구라 해도 이를 정치적으로 조직하지 못하면, 즉 ‘정치’ 가 없다면 소수민족이나 부족으로 남아 그들이 거주하는 나라의 탄압을 받게된다. 정치가 없는 서러움인 것이다.
반대로 비슷한 규모의 북한은, 그 ‘정치적조직’ 즉 정치체제가 반인간적 이어서 국민이 심각하게 고통받는 나라다. 사이비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와 변질된 스탈린주의, 그리고 세습독재권력의 무서운 탄압이 국민을 노예처럼 가두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계획경제는 오늘날 북한을 세계최빈국이 되게 했으며, 변질된 스탈린주의는 모든국민이 감시의 눈을 피할수 없는 ‘병영국가’ 를 만들었다. 세습된 독재자 김정일은 신(神)이 되어 비밀경찰-폭력-강제수용소로 국가를 공포 정치로 운용하고 있다. 핵(核)이 김정일의 대외적인 보호장치라면 비밀경찰-폭력-공포정치는 대내용 안전장치인 것이다. 100만 단위의 아사자가 발생해도, 국민의 3분의 1이 굶주리고 있어도 김정일이 건재한것은 그에게 ‘정치적인 힘-폭력’ 이 있기 때문이다. 쿠르드족은 정치가 없어서, 북한은 무서운 독재-공포정치 때문에 그 국민들이 고통받고 신음하고 있는것이다.
그렇다면 ‘정치’ 란 무엇인가. 그것은 일차적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다. 다스린다는 것은 보살피고 주재하는것이다. 그래서 정치는 국가를 운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필요한것이 다스릴수 있는 힘이다. 그게 권력(權力) 이다. 정치는 그래서, 그 권력을 합법적으로, 정당한 방법으로 획득하는 것이기도 하다. 다음, 정치는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 하도록 하는 힘이며 기술이다. 다른말로 그게 정책(政策)이다. 나아가 정치와 그 힘인 권력은, 사회안에 존재하는 각종 ‘차이-서로다름’을 조정하는 기능이기도 하다. 분열을 막고 공존(共存)하게 하는 힘이다. 그리고 정치는, 사회의 ‘질서’ 를 바로잡는 기능이다. 줄을서지 못하면, 차례가 지켜지지 않으면 ‘약육강식’ 의 원시사회가 된다. 그래서 정치는 ‘새치기’ 를 척결하는 기능이며 힘이다. 여기까지만 살펴봐도 우리모두는 한시라도 ‘정치’ 없이 생활할 수가 없다. 정치자체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다. 좋은정치, 나쁜정치는 사람이 정치를 그렇게 만든 결과일뿐이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하나의 국가사회를 평가할 때 사용하는 보편적인 기준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다. 우리라고 예외일수는 없다. 이미 우리의 경제는 세계10위권 안팎을 오르내리는 ‘경제대국’으로 분류된다. 지금이 어렵다고 해도 단 두세대전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지금 우리들은 얼마나 잘 살고 있는가. ‘보리고개’ 가 엊그제 였는데, 10월말 기준, 쌀재고량이 82만톤이 될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올해에만 평년작을 웃도는 465만톤이 생산될 것이다. 겉으로 볼때,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거의 진입해 있다. 하드웨어에서는 단연 그렇다. 그러나 소프트웨어, 즉 그 속내는 텅빈채 겉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특히 법질서의 문란은 후진국 수준이다. 불법, 편법이 판을 치는 무질서의 사회다. 세계최고수준의 IT 제품은 있어도 그것을 사용하는 예절-문화가 크게 부족하다. 남을 배려하지 않는, 개인주의 이기주의 사회다. 밖에서 들어온 모든 종교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뿐 하나같이 미신화 되었다. 우리의 전통종교가 샤머니즘이기 때문이다.
미국 외교전문지인 ‘포린폴리스’ (FP) 15일자는, ‘최근 한국은 의회(국회)난투극 분야에서 세계최고’ 라고 하면서 ‘한국민주주의는 종합격투기를 통해 이루어 진다’ 고 비아냥하고 있다. 특히 한국의 국회의원들은, ‘피를 봐야하는 욕망을 지닌 사람들’ 로 매도하고 있다. 그게 어떤 나라든, 정치의 시작과 끝은 곧 국회다. 정치 1번지는 언제나 국회다. 그 국회가 세계최고의 폭력과 난투극이 횡행하는 곳이라면 한국정치는 죽었다는 얘기다. 지금 우리사회의 각종 본질적인 혼란은 ‘친북좌파’ 10년집권의 ‘정치적 후유증’ 이다. 정치는 그렇게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다. 그리고 그게 누구든 국민은 그 정치의 후폭풍을 피해 갈수가 없다. 투표에 불참하는 소극적 기피행위 까지도 예외는 아니다. 정치는 공기처럼 밀접해 있고, 세끼의 밥처럼 일상적이다. 피해갈수 있는 방법이 없다.
21세기 선진국을 지향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있어 ‘정치’의 의미는 어떤것이며 그 정치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종합격투기’ 가 된 한국정치판의 핵심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그 하나가 극단적인 대립니다. 토론문화의 전통이 없고, 목에 칼이 들어와도 변절하지 않는다는 잘못된 선비정신이 합쳐져 타협없는 대치로 세월을 보냈다. 여기에 ‘선명성’ 을 드러내 보이려는 강경일변도의 독선이 대화와 타협을 가로막는 덫이 되고있다. 다른 하나는, 이미 용도폐기된, 다 낡아빠진 ‘이념의 대립’ 이다. 이 갈등은 도무지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89년의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91년의 소련해체는 동구라는 불럭자체를 없애버렸다. 그런데 그게 엉뚱하게도 한국땅에서 유령처럼 솟아올라 ‘이념갈등’ 이라는 때지난 전쟁을 치르고 있는중이다. 이 무의미한 소모전이 국력을 갉아먹고 있는 소리가 얼마나 큰것인지 들을줄 알아야 한다.
우리의 정치판은, 논리(論理)보다는 감정(感情)아 앞선다. 이는 민족성과도 깊은 연관이 있을것이다. 사소한 일에도 격렬하게 싸우는게 그런것이다. 논리보다 감정이 앞서면, 토론이 안되고, 사안을 검토할 수가 없다. 그래서 물리적인 충돌이 일어나고 고함과 주먹이 오가는 것이다. 똑같이, 총론(總論)에는 강하고 각론(各論)에는 약하다. 선거철이면 난무하는, 말도 안되는 구호들은 다분히 감정적이고 총론적이다. 공약(公約)이 공약(空約) 이 되는 악순환이 그렇게 오래동안 계속 되면서도 고쳐지지 않는게 그 때문이다. 모두가 그러려니 하고 살고있지 않는가. 국회의원이 국회도서관에 들어앉아 법안을 연구하는 풍토가 생기지 않는한 풀기 어려운 숙제다. 정치가 땅에 발을 붙여야 개선의 여지도 생긴다. 지금의 풍선정치는 그대로 가면 실종될수밖에 없다.
지역구에서 선출된 국회의원은, 말하자면 자기 선거구민들-유권자들을 대표하는 대의원(代議員)이다. 선거구민의 정치적인 입장과 희망을 대표하는 독립적, 정치적 존재인 것이다. 그 국회의원이, 당론(党論) 때문에 독립성을 훼손 당하는게 지금의 국회다. 그 당론을 밀어붙이기 위해 격돌하고 지역구민들의 대표인 국회의원은 한낱 당의 졸(卒)이 되고만다. 당론과 공천이 한국정치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큰 덫임을 이제는 깨달아야 한다. 지난 8월 28일, 민주당이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들의 사진을 회의장 벽면에 거는 행사를 가졌다. 과거로 돌아가겠다는 의지다. 유훈정치를 하겠다는 속내다. 벽마다 김일성, 김정일의 사진을 거는것과 무엇이 다른가. 정치의 발전은, 언제나 건전하고 건강한 야당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민주당이 변해야 하는것이다. 반드시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민주당, 야당이 돼야한다.
우선, 김대중, 노무현과 결별해야 한다. ‘집권10년’ 의 덫에 걸리지 말아야 새것이 나올수 있다. 다음은, 집권여당과 확실하게 차별되는 ‘정책’을 발굴해 내 놔야 한다. 그래서 민주당은 공부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문을 활짝열고, ‘다른 사람들’ 도 받아 들여야 한다. 다른생각, 다른 아이디어, 다른정책은 다른사람들에 의해 창출될수 있다. 지금의 ‘게토’ 같은 민주당, 특정지역만 대표하는 민주당 으로서는 앞날이 없다. 이제는 어떤일이 있어도 의사당을 떠나 거리로 나서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건 정치의 포기다. 민주당은 시민단체가 아니다. 지역구에 뿌리를 두고있는 ‘정치정당’ 이다. 다수결과 그 결과에 승복하는 성숙한 자세도 보여줘야 한다. 좋은야당없이 좋은여당없고, 좋은여당없이 좋은나라없다. 정치는 그겋게 중요한 것이다.
한국의 정치1번지. 그 국회는 ‘폭력과 야만성’에서 세계챔피언이 되었다. 지금 우리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폐단은 ‘준법정신’ 이 없는것과 그 결과인 ‘무질서’ 이다. 법을 만드는 입법부, 국회에서 시작된 불법이 전체사회에 퍼졌기 때문이다. ‘법질서’ 없이 선진국은 불가능하다. 그건 충분조건이 아니라 절대조건이다. 그래서 지금의 국회, 정치판은 나라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이며, 우리의 발목을 잡고있는 거침돌이다. 누가 이 막가판 국회를 바로잡을 것인가. 그들에게 ‘자정능력’ 이 없음은 이미 충분히 증명됐다. 그래서, 그것은 우리들-유권자들의 몫이다. 강기갑과 경남 사천선거구는 그 조합이 크게 잘못된 대표적인 케이스다. 유권자-국민이 정신을 차리는 길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국민-유권자의 수준이 곧 정치의 수준이 아니겠는가. 신중한 선택과 적극적인 투표, 해답은 그 안에 있다. 이제는 단연코 우리가 그들을 바꿔야 한다. 그게 유일한 해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