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사람이 산을 내려가다 길을 잃었다. 여기저기 헤매던중 산을 올라오는 스님 한분을 만났다. ‘스님, 제가 내려가는 길을 잃고 헤매고 있습니다. 내려가는 길이 어느쪽에 있는지 가르쳐 주십시오.‘ 스님의 대답은 짧았다. ‘물을따라 내려가게.’ 法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한문글자가 가지는 깊은뜻을 깨달을수 있다. 사람이 한문을 배워야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法자는, 삼수변(三水邊)에 갈거(去)가 조합된 글자다. 물을따라 가는게 ‘법’ 이라는 뜻이다. 생각할수록 오묘한 이치가 그 안에 있다. 물의 흐름을 따라가는것, 그 순리(順理)의 이치(理治)가 곧 법이며 법의 힘은 그 순리의 이치안에 있다.
물은 높은곳에서 낮은곳으로 흐르며 종당에는 그 목표인 바다에 이른다. 이 속성은 변하는법이 없다. 그 어떤것 으로도 물의 흐름은 막지못한다. 깊은곳은 고였다 가고, 막히면 돌아간다. 그리고 물은 언제나 모든사람들의 것이며 물은 우리생명의 근원이기도 하다. 물을 따라가는것이 곧 法이라는 이 이치는 그래서 절묘하기까지 하다. 法의 일차적 의미는, 국가의 강제력을 수반하는 사회적 규범이며 국가 및 공공기관이 제정한 법률이나 명령, 규칙, 조례등을 아우르는 말이다. 정서적 으로는 인간의 도리와 이치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모여사는 사회공동체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질서를 지켜야 평화롭게 살수있다. 이때의 질서는 공동체 구성원들간의 ‘약속’ 이며 그 이름이 ‘법’ 이다. 이 약속의 이행에는 국가의 강제력인 공권력이 동원되며 약속-법을 어긴 사람에 대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제재를 가하게 된다. 고대사회에서는 통치자가 곧 판관(判官)인 이유가 그때문이었다. 솔로몬왕의 유명한 재판이야기도 그 증거의 하나다.
모두가 아는대로 우리나라는 ‘법치국가’다. 그리고 법치의 중심에 ‘헌법’ 이 있다. 본래 법치주의(法治主義)는,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는 전제아래 덕치(德治) 사상을 배제하고 법률에 의해 백성을 다스려야 한다는 이념이며, 권력자의 자의(恣意)를 배제하고 국가권력의 행사는 반드시 법률에 근거해야 한다는 근대 입헌국가(立憲國家)의 정치원리 이기도 하다. 따라서 헌법이 가지는 의미는 실로 막중하다. 헌법은 근본이 되는 법규이며, 국가 통치체계의 기본적 조건과 국민의 기본적 권리, 의무등을 규정하는 근본법 이기도 하다. 국가의 주체, 객체, 기관, 작용등의 대원칙을 정한 기초법이며 다른 법률이나 명령으로 변경할수 없는 최고법이기도 하다. 직접적으로 헌법의 조규(條規)에 기초를 두고 설치된 국가기관으로는 대통령, 국무위원, 국회, 법원등이 헌법기관이다.
여섯가지 기본이 되는 법률을 육법(六法) 이라고 한다. 헌법, 형법, 민법, 상법, 형사소송법, 민사소송법이 그것이다. 육법의 유형과 내용은, 인간의 사회공동체가 부딪히는 핵심적인 ‘관계’ 가 어떤것인지를 말해준다. 온갖 시시비비와 분쟁, 그리고 그 해결을 위한 방편이 곧 육법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사회 안에는 소위 법조계(法曹界)라는것이 있다. 재판관, 검찰관, 변호사등 법률관계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사회를 그렇게 부른다. 분명한것은 그 세계가 고도의 전문화된 사회이며 일반인의 접근이 쉽지않은 계층사회라는 점이다. 재판관과 검찰관이 아닌 변호사는 의뢰인과의 접촉이 쉽게 이루어 지는데 이는 재판절차와 재판내용, 판결을 유리하게 이끌어내기 위한 전략이기 때문이다.
검사(檢事)는, 범죄의 수사, 공소(公訴)의 제기, 공판절차의 추구, 형(刑)집행의 감독등을 행하는 사법행정관 으로서 검찰관 이기도 하다. 공소는 검사가 법원에 특정 형사사건의 재판을 청구하는 일로서 국가가 원고가 되어 형사범을 고소하는 것이다. 재판관(裁判官)은, 법원에 소속하여 재판사무를 담당하며 재판권을 실행하는 국가공무원이다. 모든 권력으로부터 독립하고, 헌법, 법률에만 구속되며 양심에 따라 직권을 행사한다. 이들 판사(判事)는, 대법원장과 대법관이 아닌 법관이며 고등법원, 지방법원, 가정법원에 배속된다. 한편 법관은, 법원을 구성하고 대법원, 또는 각급법원에서 재판을 담당하는 공무원이며 임기는 10년, 대법관과 대법원장은 임기가 6년이다. 일반적으로 재판소라 불리는 ‘법원’ 은 국가의 사법권을 행사하는 기관으로서 구체적 사건에 대해 법률적 판단을 하는 권한을 가진다. 대법원, 고등법원, 지방법원, 가정법원이 있다.
인간에 대한 인간의 재판, 판단은, 신이아닌 이상 오류가 있을수 있다. 오심(誤審), 오판(誤判)이 그것이다. 사형을 언도, 형이 집행된뒤 진범이 잡힌경우도 있었다. 그 판결을 내렸던 판사는 옷을벗고 출가, 스님이 되었다. 재판에서 삼심제(三審制)가 도입된게 그 때문이다. 삼심제는 재판의 판결에 불복하는 경우 한 사건에 대해 세번재판을 받을수 있는 제도다. 상소(上訴)는, 하급법원의 판결에 따르지 않고 상급법원에 재심을 요구하는 일이며, 상고(上告)는 제2심 판결에 대한 상소다. 법원, 법관, 재판은, 원고와 피고가 분명해진 상태에서의 법집행 절차다. 같은 법률의 집행이라 해도 고소나 기소(공소)가 이루어진 이후의 법절차인 것이다. 따라서 법관은 그 이전의 ‘현장상황’ 에 대해서는 간접적인 위치에 있는게 사실 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의 약점이기도 하다.
같은 법률이라 해도, 법원이 아닌 현장-사회에서의 법집행은 구체적인 공권력의 실력행사로 집행된다. 이때의 공권력(公權力)은 글자 그대로 사사로운 개인의 폭력이 아니라 정당한 국가의 법집행 실력인 것이다. 최일선의 현장에서 공권력을 집행하는 국가조직이 ‘경찰’ 이다. 법정에 앉아있는 법관의 현장과, 불법폭력시위대와 맞서있는 경찰의 현장은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 법집행의 최일선에서 국가의 법을 집행하는 경찰에게 있어 그 힘은 국가-법으로 부터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그것을 공무집행(公務執行) 이라고 부른다. 이때 그 국가공권력에 대해 폭력을 가하고, 사법경찰관을 폭행 부상케 한다면 이는 중차대한 반국가적 범죄가 된다. 법-약속이 무너지면 ‘약육강식’ 의 원시사회가 되기 때문이다. 국가의 정당한 힘, 공권력이 필요한 이유가 그것이다. 그래서 공권력은 강물의 범람을 막는 둑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2008년 5월부터 2009년 8월까지, 서울지방법원과 서울고법에서 재판받은 ‘불법폭력시위대’ 의 절반정도가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도 항소심에서 집행유예(執行猶預)로 풀려났다. 집행유예는, 범죄자에게 단기(短期)의 징역, 또는 금고형을 선고할 때 정상에 따라 일정기간 그 형(刑) 의 집행을 미루는 것이다. 이들은 불법폭력시위에서, 스프레이 파스에 불을붙여 경찰에게 쐈으며, 염산병을 만들어 경찰을 향해 던졌고, 철제 삼단봉으로 경찰관의 머리를 내려치기까지 했다. 망치와 밧줄, 칼을 들고 다니면서 경찰버스를 훼손한 자들도 있으며, 특정건물에 쓰레기를 투척하며 난동을 부린 사악한 인가도 있다. 이런 부류들은 가장 분명한 반사회적 세력들이다. 온갖 불법폭력시위가 있는곳에 그 얼굴을 내밀고 있는 ‘직업시위꾼들’ 도 많다. 1심에서의 실형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다면 누가 이들 범죄자들을 응징할수 있겠는가. 사람에게 위해를 가하는 짐승을 그 우리에서 풀어주는것과 무엇이 다른가.
검찰은 즉각, ‘법원이 공권력에 큰 피해를 가한 범죄에 온정적인 태도로 대하기 때문에 불법폭력시위를 벌여도 무거운 처벌을 받지않는다는 일종의 학습효과가 생긴다‘고 비판했다. ‘경찰이 폭력시위가담자들을 상대할 때 무방비 상태에 빠져 고립될때가 있다. 그때 공권력-경찰을 지켜주는 힘은, 법을 공격할 경우, 공권력-경찰을 공격할 경우 엄벌에 처해진다는 시위가담자 들의 인식이다.‘ 즉 나라의 법만이 공권력을 지킬수 있다는 일선 경찰서 수사과장의 얘기다. 재향경우회는, 일간지에 실린 광고를 통해 사법에 묻고있다. ‘판사들이 경찰과 시위꾼이 충돌하는 불법폭력시위현장을 한번이라도 경험 했다면 그런 판결(집행유예)을 할수 있겠는가.‘
옛날의 법조인은 존경의 대상이었다. 젊은 판,검사도 ‘영감님’ 으로 불릴때다. 그때는 그들이 보통사람들 보다 교육도 많이 받았고 아는것도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그 반대다. 정보화 시대에서 이미 지식은 보편화됐다. 오히려 그들의 ‘법적전문성’ 은 편협과 배타적인 고립으로 가고있다. ‘고시원-高試院’ 이란 단어가 그 키워드다. 외부와 차단된, 그 비좁고 음습한 공간에서 고시준비를 위해 장기간 칩거하는 사이 ‘세상물정’ 을 모르는 단선형 인간이 되는것이다. 본래 고등고시는 일제의 잔재로, 행정고급공무원, 법관, 검사, 변호사, 외교관등의 임용자격에 관해 국가가 시행한 시험이다. 그것이 1963년 5월9일자로 공포된 ‘사법시험령’ 에의해 ‘사법시험’ 으로 대치, 존속되었다. 이 시험은 1.2.3차로 구분해서 시행되며 시험과목은, 헌법,민법,형법,상법,행정법,민사소송법,형사소송법이다. 이 방대한분량의 범률공부를 하는 기나긴시간, 신문한장 제대로 읽을수도 없다. 세상물정에 어두운 외골수 인간이 나올수밖에 없는 물리적 환경이다. 그 좁은 인간적폭으로 ‘온정주의’ 일변도로 나갈 때 대한민국의 공권력은 병들고 힘을 잃어가고 있다. 이게 어떻게 보통일인가. 대한민국의 사법부는 이제 국민들을 향해 대답을 해야한다. 그리고, 우리도 이제는 권위주의적인 판결의 독점과 횡포를 막기위해 ‘배심원제도’ 의 도입을 생각할때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