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재학중에 군 복무를 마치고 1962년에 대학을 졸업했으며, 곧바로 친지의 추천으로 미국인기관에 취직했다. 그리고 출근첫날, 도저히 넘을수 없는 큰 벽에 부딪혔다. 같은 사무실에 있는 미국인들이 하는 얘기를 전혀 알아 들을수가 없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알아들은 질문이 있다해도 대답을 할수가 없었다. 머리속 으로는 대답할 말이 정리 되었는데도 그게 입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소통이 안되는 언어의 벽, 그건 태산보다 높고 견고 하다는것을 그때 뼈저리게 느꼈다. 그런 상태로 그 사무실에서 계속 근무한다는것은 불가능했다. 취업이 어렵기는 그때도 마찬가지 였고, 엄친이 안계신 가정을 짊어져야 하는 책임에서 도 더 그랬다. 퇴근해서 집에 돌아온 나는 밤늦도록 책상에 앉아 수많은 생각을 했으며 이 어려운 국면을 돌파할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정말 노심초사했다.
그때 내가내린 결론은, 우선 그 사무실에서 가장많이 사용하는 단어들을 따로모아 카드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건 한국어와 한문을 공부하는 미국인에게서 힌트를 얻었기 때문이었다. 카드의 앞면에는 영어단어를, 그리고 뒷면에는 발음기호와 뜻을 적은다음, 양복저고리의 왼쪽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하나씩 꺼내 영어를 읽고, 뜻을 암기한후 오른쪽 주머니에 넣었다. 일차적으로 그런 카드를 100개 만들어서 암기식으로 공부했다. 다음은, 가장 빈번하게 사용하는 질문과 대답을 문장으로 만든다음 죽기아니면 살기로 소리 내어 읽으면서 암기했다. 그때 누군가가 내 옆에서 나를 자세히 관찰했다면 분명 '실성한 놈' 이라고 했을것이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않고 단어외우고, 문장 외우느라 중얼거렸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집중했다. 그건 발등에 떨어진 불이었기 때문에 체면을 차릴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몇개월후, 놀랍게도 나는 그들과 말-영어로 기본적인 소통을 할수가 있었다. 그건 정말 놀라운 체험이었다. 그들은 내 열심과 노력에 탄복했고, 뜨거운 격려와 함께 지도를 아끼지 않았다. 그중에는 45년이 훨씬지난 지금까지도 가까운 친구로 지내는 사람들이 있다. 재미있는것은, 국제전화에서 한국에 있는 나는 한국어로 말하고, 미국에 있는 미국인 친구는 영어로 말 하는데도 그 통화는 전혀 지장이 없다. 서로가 상대방의 언어를 다 알아듣기 때문이다. 언어-말은 그렇게 신비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자립도는 3%수준이며, 식량의 자급도는 26%다. 많은 사람들이 쌀의 자급도가 높기때문에 우리의 식량자급도가 높은줄 알지만 쌀을 제외한 모든 필요곡물은 거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에너지와 식량은 생존의 기본축이다. 3% 와 26%는, 우리가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임을 가장 잘 보여주는 바로메타다. 이점은 앞으로도 결코 변함이 없다. 무역업무에 종사해본 사람은 다 아는 일이지만, 무역에 필요한 거의 모든 서류는 영어로 되어있다. 미국의 달러가 세계경제의 기축통화 이듯이 영어는 세계무역의 기축언어다. 말하자면 영어라는 소통수단이 없으면 다른 나라와의 거래자체가 성립이 안된다. 지금의 세계에서 영어는 그렇게 중요한 기축언어다.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하는 나라가 늘어나고 있는것은 절실하고 현실적인 필요성 때문이다. 이제 영어는 세계언어인 것이다. 영어권은 말할것도 없고 영어권이 아닌 국가끼리도 그 소통수단은 영어다.
인류문화사에서 대표적인 세계어는 세가지로 볼수있다. 기원전 2000년경 미케네문명을 일으킨 그리스어가 그것이다. 지중해를 중심으로 하는 세계에서 그리스어는 세계어가 되었으며 특히 코이네-koine 그리스어는 신약성경을 기록한 언어다. 그리스어는 신학은 물론, 철학의 언어이기도 하다. 다음이 라틴-latin 어다. 기원전600년경부터 비잔틴제국(동로마) 이 멸망한 1453년까지 로마제국의 공용어가 그것이다. 인도-유럽 어족에 속하며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포루투갈, 루마니아어가 라틴계 언어에 속한다. 스페인, 포루투갈어를 주로 사용하는 남미를 라틴아메리카라고 부르는게 그때문이다. 라틴어는 중세시대에 세계어로 사용되었으며 법과 제도의 언어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의 영어가 현대인의 세계어다. 영어는 인도-유럽어족으로서 게르만파에 속하며 프랑스어 에서 받아들인 차용어 (借用語) 가 많은게 특징이다. 영국, 미국, 카나다, 호주가 국어로 사용하고 있으며 이제는 6대주의 세계언어로 자리 잡고있는 기축언어인 것이다.
영어알파벳은 장사꾼인 페니키아인들이 상업적 필요때문에 만들었지만, 그 글자를 차용해서 세계언어가 된 그리스어나 라틴어, 그리고 영어 모두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국가나 지역의 막강한 지배력-힘에 의해 세계어가 된 공통점이 있다. 이제 영어없이 지구촌에 편입 한다는것은 생각도 할수없는 세상이 됐다. 우리처럼 부존자원이 없이 무역으로 멀고 살아야 하는 나라로서는 정말 사활이 걸린 중요한 문제가 아닐수 없다. 지금 전국이 영어전쟁으로 들끓고 있는것은 꼭 부정적인 현상만은 아니다. 잘못가고 있는게 문제지 영어열기 자체는 옳게만 정착한다면 엄청난 자산이 될수있다.
국어, 영어, 수학은 대표적인 입시용 도구과목으로 전락했지만, 본래의 그 학문적 비중은 여전히 큰 과목들이다. 영어의 경우 공교육 과정만 기준해도 중,고교에서 6년동안 배우는 대표적인 외국어다. 여기에 대학 4년까지 합한다면 실로 10년동안 계속해서 배우는 외국어인 셈이다. 그런데도, 10년동안 영어를 배웠는데도 그 영어를 써야하는 현장에 가면 귀머거리에 벙어리가 되고만다. 내가 바로 그런 케이스였다. 때문에 나는 누구보다도 영어교육이 안고있는 문제에 대해 체험적 얘기를 할수있다. 그후에도 10여년을 미국인들과 생활했기 때문에 우리의 영어교육이 가지고 있는 문제에 대해 그 개선책을 제안할수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생각해야 할점은, 영어를 공부하는 물리적 시간의 양이다. 최근의 한 통계에 의하면 중,고교 6년동안 학교에서 배우는 영어교육 시간은 총 708 시간이라고 한다. 이것을 일수로 환산하면 29.5일, 채 한달이 안된다. 천재라고 해도 29.5일로는 외국어를 배울수는 없다. 6년동안 채 한달이 안되는 시간으로 어떻게 제대로 된 외국어를 배울수 있겠는가. 지금의 영어수업 시간을 대폭적으로 늘리는 한편 부분적으로 영어에 의한 수업방식을 도입해야 한다. 말하자면 영어공부하는 시간과 방법을 개선, 외국어에 대한 교육환경을 바꿔야 한다.
다음이 학습방법이다. 지금까지도 우리는 문법과 독해위주, 그리고 입시용의 경직된 영어교육으로 일관하고 있다. 내가 미국인 직장에서 겪었던 실례가 그것이다. 머리속 으로는 문장을 만들어도 그것을 입밖에 내지 못한것은 '회화' 연습이 전무했기 때문이었다. 학문적으로 전문분야로 나가기 위해서는 고급영어를 배워야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일상에서 사용하는 구어체와 회화중심의 살아있는 영어교육을 시켜야 한다. 사실 일상회화에서 쓰는 단어는 많지가 않다. 누구라도 조금만 열심을 내면 일상적인 의사소통은 결코 어렵지 않다.
영어교육에는, 더 크게는 외국어 교육에는 지름길이 없다. 100을 투자하면 100밖에 얻지못한다. 무슨 얘긴가. 암기훈련이 그것이다. 기본적인 단어, 문장들을 선별한후 죽기아니면 까무라치기로 암기해야 한다. 소리내어 읽어가며 외우는 방법은 원시적인것 같지만 그 효과는 아주크다. 질문과 대답으로 만든 문장 50개만 암기하고 말할수 있다면 그 다음은 술술 풀리는게 영어다. 알고있는 문장에 단어만 바꿔끼우면 되는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6년에서 10년동안 영어를 배우고도 듣지못하고 말하지 못하는것은 영어를 사용할수 있는 공개적이고 공적인 환경이 없기때문이다. 학교만 졸업하면 영어는 그대로 죽은언어가 되고만다. 쓸일이 없기 때문이다. 고정적인 영어방송, 영어의 텔리비젼 차넬, 그리고 부분적 이거나 전면적인 영어공영화 가 실시 되어야 한다. 영어의 공용어 문제는 시기적으로 이미 늦었다고 보는게 옳다. 얼마전 소설가 복거일씨가 모 신문에 영어공용화를 제안하는 그을 썼다가 몰매를 맞는 것을 보면서 우리의 의식구조가 싱가폴, 필리핀, 인도보다도 후진국 이라는 생각을 했다. 영어를 제대로 못한다는것은 이미 가지고 있는 온갖기량을 다 펴지못한다는 뜻이다. 이민간 한국의 석, 박사들이 세탁소하고 봉제공장 다니는게 그것이다. 모든 경쟁에서 질수밖에 없다. 학교를 졸업하고도 계속해서 영어를 사용할수 있는 공적인 환경을 만드는 일은 그래서 시급하다.
또하나 지적해야 할것은,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외국어 공포증이다. '틀리면 안된다' 는 강박관념이 공포로 변하면 끝까지 외국어는 하지못한다. 어린애들이 외국어를 빨리 배우는것은 틀려도 틀린줄을 모르고 부끄러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인이나 일본인이 우리말을 하는게 신기해서 칭찬해주고,틀린 말 이지만 그들의 뜻은 다 파악할수 있다. 말하자면 상대적으로 우리도 마찬가지다. 외국어는 틀리는게 정상이다. 그게 외국어니까.
아내는 현역화가이자 30년을 넘게 아이들에게 미술을 지도하는 선생님이다. 아내가 그림 다음으로 좋아하는게 영문소설 읽기다. 그렇게 영어를 좋아한다. 실력도 상당한 수준이다. 한번은 아이들에게 아주 간단한 문장의 영어질문을 적어주면서 다음날 영어로 대답을 적어 오라고 했다. 수십명의 애들중 대답을 적어온 애는 단 한명뿐 이었다. 그 아이들은 모두, 이미 오래동안 영어학원에 다니는 애들이다. 그 아이들은 영어학원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엄마들은 그것을 체크하고 있는가. 자기가 모르니 체크할 방법이 없다. 그러면서 비싼 학원비만 내고 있는것이다. 이게 지금 대한민국 영어교육의 축소판 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얘길까.
적어도 당분간은 영어가 지구촌 시대의 기축언어다. 그 언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나라는 도태될수밖에 없다. 날로 심화되고 있는 언어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인 것이다. 이제는 영어교육의 바탕부터 바꿔야 한다. 그리고 아주 어려서부터 국어와 영어를 같은비중으로 심도있게 교육해야 한다. 국어교육이 중요한것은 정체성의 문제도 있지만 자국어 구사능력이 뛰어나야 외국어도 뛰어나게 할수있다. 이점은 이미 학문적으로도 검증이 끝난 테제다.
지금과 같은 경직되고 비 효율적인 영어교육 으로는 투자에 대한 결실이 빈약할수 밖에 없다. 그런 영어 백년 가르쳐봐야 죽은영어다. 문교부가 없어져야 한국의 교육이 살아난다는 말은 교육정책을 만들고 학교에 간섭 하는 관료들의 경직된 머리가 바뀌지 않는한 희망이 없다는 뜻이다. 우선, 단연코 그들부터 몰아내야 한다. 그리고 교육의 속성을 제대로 아는 새 사람들로 대체해야 한다. 다음은 대통령이 결단을 내려야 한다. 영어의 '공용화 선언' 이 그것이다. 시작은 이미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산 영어를 가르치고 쓰게해야 우리에게 앞날이 있기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