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2차대전 이후, 일본은 유일하게, 그리고 전 세계가 인정하는 '선진국' 이 됐다. 일본은 아시아 국가이며 우리의 바로 이웃나라다. 아시아 국가로서 올림픽과 월드컵 축구경기를 함께치른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게다가 우리는 올림픽 경기종목의 '꽃' 인 '마라톤' 에서 두번이나 우승한 아시아의 유일한 국가이기도 하다. 작년에 우리는 수출 4000억불로 세계13위의 경제대국임을 입증했으며 일본과 함께 OECD 가입 국가이며 G20 에도 같은 테이블에 앉는다. 문명(文明) 이라는 하드웨어에서 우리와 일본은 큰 차이가 없다. 도쿄와 서울을 비교해 봐도 겉으로는 뚜렷한 우열을 가리기가 어렵다. 그런데도 일본은 자타가 공인하는 '선진국' 이고 우리는 아니다. 지금대로라면 조만간 선진국이 될 가능성도 거의없다. 그리고 이 차이는 본질적인 것이다.
나는 강산이 변하는 기간만큼 그 일본인들과 한 사무실에서 일했다. 그리고 그들과 우리의 차이는 양(量) 이 아니라 질(質) 이라는 사실도 일찍 깨달은 바 있다. 그이전 거의 같은기간 미국인들과 일하면서 느낀점도 마찬가지였다. 겉이 아니라 속에서,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후, 프랑스 빠리의 17구, 프랑스 중산층 가정에서 한달동안의 장기민박을 통해 질적차이 (質的差異)에 대한 확신을 다시 가질수 있었다. 학교교사인 그 프랑스인 가정은, 거주공간 의 수준에서나, 편의시설, 식사의 내용에서도 우리집만 못했다. 말하자면 하드웨어 에서는 우리가 앞서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의 질(質)은 미국과 일본에 앞서 있다는것을 실감해야 했다. 왜 프랑스가 세계최고 문화국가 인지를 피부로 느낄수 있는 살아있는 체험이었다. 그들은 그 사고체계와 생각하는 세계가 우리와는 차원이 달랐다. 한두시간씩 이어진 저녁식탁에서의 화제는 우리는 알지도 못하는 것들이었다.
우리모두는 '선진일류국가' 를 지향하고 있으며, 또 그렇게 돼야한다. 선진사회는 보통사람이 살기가 아주편하고, 무엇보다 법질서가 확실하고 평화롭다. 모두가 법앞에서 평등하고 약자가 더 보호받는 시스템이 분명하다. 지금의 우리가 선진국을 지향하는것은 아직 우리가 선진국이 아니라는 자기인식이 있기때문이며 그래서 그것을 목표로 나아가고 있는것이다. 그렇다면 선진국이 되기위해 필요한 국가적 역량에서 무엇이, 어떤 부분이 취약하고 걸림돌이 되는지를 확실하게 아는게 급선무다. 그 약점들을 극복하지 않고는 선진국이 될수 없기때문이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해서는 모두가 사심없이 '정직' 해야한다. 사실에 근거해야 하며 객관적 기준에 충실해야 한다. 스스로 속이면 아무 결과도 얻을수 없다. 그점이 중요하다.
이 힘든 작업을 위해 사용할수 있는 '도구' 의 하나가 지난해 이맘때 있었던 '공우병촛불시위' 다. 그 사건의 전말을 따라가 보면 왜 아직도 우리사회가 그 내용에서 선진국이 될수 없는지를 소상하게 설명할수 있다. 한 나라의 수도를 100여일동안 무법천지로 만들었던 그 '폭력시위' 는 거짓을 기반으로 시작됐다. 2007년 4월 29일, 지금은 복마전이 된 MBC가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 라는 PD 수첩을 방송했다. 광우병에 걸린 '주저앉는소' 가 방영됐고, 광우병으로 딸이죽은 흑인 어머니의 눈물이 시청자들을 자극했으며, 영어 번역자에 의한 날조와 과장, 거짓이 그대로 전파를 탔다. 일반시청자를 대상으로 하는 공중파방송이 사실을 왜곡, 거짓을 방송할수 있다는 것은 '후진국' 에서만이 가능한 일이다. 선진국에선 그 엄격한 감시기능때문에 이런 거짓선동이 자행될수 없다. 그 처벌역시 가혹하다. '진실' 에 대한 기본자세에서 다르기 때문이다.,
이 거짓보도가 있은지 사흘후부터 촛불시위가 시작되었으며 나라는 걷잡을수 없는 혼란속으로 빠져들었다. 한가지 분명히 해야할 점은, 그 시기와 강도에서 문제가 있었지만 정부는 그 방송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객관적인 자료들로 홍보하기 시작했으며 각종 언론도 같은 내용의 보도를 계속했다. 주저앉은 소는 광우병소가 아니었으며, 눈물을 흘린 흑인여인의 딸도 광우병으로 죽은것이 아니었고, 미국은 물론,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해 먹고있는 141개 국가에서 광우병 환자가 단 한명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영어번역자에 의해 프로그램 전체에 걸친 날조와 왜곡, 거짓도 낱낱이 폭로됐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위는 점차 폭력화 했으며 결국 경찰력과 대치하는 '광란의 밤' 이 되고 말았다. 그것은 시위 참가자들이 냉정한 이성으로 객관적인 사실을 받아들이는 대신 거짓과 선동에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수준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광란의 시위에는 선거를 통해 '권력' 을 내준 친북좌파의 선동과 참여가 있었다. '광우병' 이라는 호재를 만나 새 정부를 흔들고 고지를 탈환하려는 저의가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사안을 단순화 하고 구호화(口號化) 한다. '목숨을 걸고 미국산 쇠고기를 먹어야 하는가' 가 그것이다. 다음은 주 타킷을 정하고 집중공략한다. 특정 언론사가 당한게 그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에게 유리한것은 크게 강조하고 너머지는 무시하는 전술을 구사 한다. 마지막이 앵무새 작전이다. 옳고 그른것을 떠나 핵심주장을 계속 되풀이 한다. 친북좌파의 고전적이고 전통적인 이 기만전술에 많은 사람들이 넘어간것은 일반대중 에게 분별력과 판단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지적수준(知的水準) 에서 밀린 후진성 때문에 시위의 규모가 커지고 폭력화 했다. 나쁘게 말하면 본래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친북좌파에게 악용된 측면이 크다.
카이로는 아랍세계의 중심지다. 카이로가 가지느 많은 특징중 하나는 비밀경찰의 막강한 힘이다. 무바라크의 장기독재정권은 비밀경찰 없이는 유지되기 어렵다. 그러나 그 비밀경찰은 '공권력-公權力' 은 아니다. 구 소련의 KGB 도 마찬가지이며 북한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 경찰력은 국민전체를 위한것이 아닌, 특정독재자와 그 집단만을 위한 일종의 특수 조직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의 국립경찰은 그 수준, 부정부패, 무능과는 별개로 분명한 국가공권력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것이 그들이다. 촛불시위 100여일동안, 정복을 입은 사법경찰이 시위대에 구타당하고, 경찰장비가 수없이 파괴되고, 시민의 통로인 도로가 무단점거된 모든 일들은 '공권력' 에 대한 침해인 것이다. 공권력이 공개적으로 공격 당한다는것은 가장 분명한 후진국 현상이다. 카이로의 정복경찰은 아무리 호르라기를 불어도 사람들은 꿈쩍도 하지않는다. 땟국물이 흐르는 흰제복을 입고 서 있는 그 모습이 애처로룰 뿐이다. 카이로의 무질서는 회복될 가망이 거의 없어보인다.
젊을때부터 지금까지 가까이 지내는 미국인 친구에게 물은일이 있다. '미국인들은 준법정신이 강한편이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대답은 간단했다. '어려서부터 법에 대해 교육을 받고, 법을 어기면 그 처벌(불이익)이 가혹하기 때문이다.' MBC 의 PD 수첩은, 이제는 그 전모가 다 밝혀진 '범죄'로 나라를 뒤흔들었다.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날조에대해 책임지는 사람도, 처벌받은 사람도 없다. PD 수첩에 대한 검찰수사는 1년전 당시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의 의뢰로 수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 수사는 해를 넘기도록 진전이 없었다. 당시 주임검사였던 임수빈 형사2부장이 제작진에 대한 형사처벌에 반대하면서 수사를 질질끌다 지난 1월 검찰의 정기인사를 앞두고 사표를 냈다. 검찰인사 직후 사건은 재배당 되었고, 지난3월 정운천 전 장관과 미국산 쇠고기 수입업체들이 정식으로 고소장을 제출하면서 수사가 재개되었다.
자고로 상벌(償罰) 이 분명치 못하면 사회가 어지러워 진다. 법을 어기고도 처벌이 약하거나 처벌 받지 않는다면 그 누가 법을 지킬것인가. 여론조사때마다 응답자의 70%이상이 '법대로 살면 손해' 라고 응답한다.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것은 후진국 공통의 약점이다. 우리사회의 고질병인 부정부패도 결국은 처벌이 무섭지 않기때문에 되풀이 되고있는 것이다. 법을 만드는 입법기관이 국회다. 그 국회안에서 벌어지는 온갖 불법폭력과 육박전은 선량한 국민이 법을 지켜야 할 명분 을 허물고 있다. '광우병촛불시위'에 대한 응분의 처벌이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고있는것은 우리가 후진사회라는 뚜렷한 증거다. 국기(國基)가 흔들릴 정도의 불법이 아직까지도 처벌되지 않고 있는것이 우리의 현주소다. 단지 폴리스라인을 넘었다고 현역의원을 수갑을 채워 체포하는 공권력은 결국 먼 나라의 얘기일 뿐이다.
하나의 국가는 국토와 국민이 있어야 성립된다. 그리고 그 국가가 선진국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물리적 국민이 '정신을 가진 시민' 이 되어야 가능하다. 시민-市民 은 단순한 국민, 그 이상의 사회문화적 존재다. '시민정신' 이 혁명을 통해 근대국가를 탄생시킨 예는 허다하다. 대표적인 것이 프랑스혁명과 지금의 문화선진국 프랑스다. 그 반대가 볼세비키혁명으로 시작, 붕괴된 사회주의다. 우리에게 정말 시민정신이 있다면 MBC 는 벌써 문을 닫았어야 한다. 시청율없이 광고없고, 광고수입없이 방송국은 운영할수 없기때문이다. 시청자-시민을 거짓과 왜곡, 날조로 우롱한 MBC 에 대해 시청거부 운동도 못하는것이 후진국수준의 한가지 형태다. 불량상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바로 그런것이다. 말하자면 거짓프로그램은 불량상품인 것이다. 응징을 못하면 또 당할수 있다. 지금 MBC 는 검찰이 법을 집행할수 없는 '치외법권의 해방구' 다. 선진국가 라면 생각할수도 없는 일이며, 우리들은 수수방관하고 있을뿐이다. 시민정신이 없기때문이다. 막장드라마에 넋을 뺐긴 사람들에게 어떻게 시민정신을 기대할수 있겠는가.
우리의 하드웨어, 겉은 이미 선진국 수준에 접근해 있다. 그러나 우리의 소프트웨어는, 안은, 의식구조는, 사고방식은 상당부분 후진국 현상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 먼저 이점을 정직하게 인정해야한다. 그래야 방도를 찾을수 있고 앞으로 나아갈수 있다. '선진국' 은 결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모두가 힘을 합쳐 만들어 가는것이다. 선진국이든, 후진국이든, 그 나라의 수준은 바로 국민들의 수준이라는 일반법칙은 변함이 없기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