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화실에는 많은 아이들이 그림을 배우러 온다. 다른 학원과는 달리 미술은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할수없는 것이기에 모두가 그림을 잘 그리고 무엇보다 그림 그리기를 즐거워 한다. 자기가 좋아서 하는일인 만큼 결석하는 애도 없다. 오히려 일주일에 한번 화실에 가는날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학부모들의 얘기다. 다른 한가지는, 미술공부가 끝났는데도 돌아가지 않으려고 한다. 정말 등을 밀어 보내야 한다. 그림공부를 더 하고싶은 욕심이 있는것은 말할것도 없지만 아내의 화실 분위기의, 자기들 집의 공간과 다른 문화적인 차이가 애들에게는 아주 새롭고, 재미있고, 흥미 롭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아내는 그림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신발을 벗어놓는 방법부터 대화 하는법, 간식먹는 매너, 특히 물감의 색깔은 전부 영어이름으로 말하도록 공부시킨다. 간접적인 영어교육인 것이다.
그런데, 오래동안 이 애들을 관찰하면서 정말 많은것을 알게 되었다. 학교 교실과는 또 다른 분위기 이기때문에 아이들의 개성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결국은 우,열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그 우,열 뒤에는 태생적인 것과 함께 그 아이가 살고있는 환경으로서의 가정이 얼마나 서로 다른것 인지를 알게해 준다. 아이들 에게는 선천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어쩌면 후천적인 것이 더 큰 영향을 줄지도 모른다. 특히 엄마의 여향이 제일 클 것이다. 애들이 최초로, 그리고 가장 밀접하게, 가장 오래동안 함께 있으면서 거의 모든 기초적 인것을 배우는게 엄마다. 결국 아이들의 서로다름은 그 뿌리가 엄마에게, 가정에 있다. 아이의 행동거지를 보면 그 부모를 알수있을 정도이며 여러아이가 함께 있기 때문에 그 서로다른 대비도 쉬워진다.
가장 큰 차이는 외모다. 첫눈에 단정하게 보이는 애가 있고 흩으러진, 제멋대로의 모습도 있다. 흥미로운 것은 애들도 외모대로 간다는 사실이다. 정말 그건 어른들만의 얘기가 아니다. 단정하게 보인다는 것은 부모가 그만큼 애에게 신경을 쓰고 있다는 뜻이다. 복장부터가 다르다. 늘 깨끗한 옷을 입는 애들이 있고, 아주 지저분한 옷을 걸치고 있는 애들도 있다. 환경이 전혀 다르다는 뜻이다. 다음이 애들이 쓰는'말' 이다. 단정한 애들은 말에 조리가 있고 겸손하며 자기주장이 분명하다. 말하자면 언어예절이 있는 것이다. 몇몇 애들은 그 수준이 놀라울 정도다. 그건 전적으로 가정교육 때문이다. 그런 아이들 일수록 말수가 적고 행동거지도 예의 바르다. 반대로 계속 떠들어 대는 놈들도 있다. 다른 애들이 그림 그리는데 방해가 될 정도로 부산하다. 남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제멋대로의 태도다. 그리고 쓰는 어휘들이 상스럽다. 도무지 그림을 그리는 애가 쓸수없는, 어울리지도 않는 단어들을 마구 구사한다. 제 부모에게서 배운 '말' 인 것이다. 한 아이는 '선생님, 화장실에 다녀 오겠읍니다.' 인데, 다른 아니는'선생님 똥 마려워요.' 다. 두 케이스의 차이는 너무나 큰 것이어서 놀라울 정도다.
미술지도는 어떤면에선 가장 어려운 공부라고 할수있다. 특히 아내처럼 학생이 설명을 이해하고 스스로 그리도록 지도하는 방법에서는 더 그렇다. 여기에서 문제되는 것이 '숙지도' 다.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소화하고, 표현하는 수준이 그것이다. 알아듣기도 빠르고, 그것을 소화, 표현 하는데 뛰어난 애들이 있다. 그런 애들이 그린 그림에는 회화성이 나타난다. 그러나 어떤 애들은 전혀 스스로 아무것도 못한다. 모든것을 엄마가 알아서 해 줬기 때문이다. 그게 중독이 되어 스스로는 아무것도 못하는 정서적, 정신적 문제아가 된 것이다. 특히 어려운 고비를 넘기지 못해 제자리 걸음만 하고있는 애들이 그렇다. 아내로서도 그런 애들이 제일 어렵다고 한다. 그림을 좋아하고 스스로도 그리려고 노력하지만 조금이라도 자기가 마음먹은 대로 안되면 쉽게 포기하고 만다. 그러니 진전이 있을수가 없다. 숙지도와 수용능력에서 우,열은 그렇게 극명하다.
바이얼린을 그리는 시간이 있었다. 어떤애는 정말 실물처럼 묘사를 잘 했고, 어떤애는 전혀 바이얼린이 아닌 딴것을 그렸고, 다른애는 만도린처럼 그렸다. 그런데 한 아이는 구도, 스케치, 채색에서 놀라운 그림을 그려냈다. 묘사도 거칠고 바이얼린의 모양도 이상하긴 하지만 완성된 그림의 전체적 분위기는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힘이 있었다. 그것이 창의력이고 회화성일 것이다. 어떤애는 실물과 똑같이 그렸지만 오히려 어떤 벽을 느끼게 하고, 전혀 다른것처럼 보이지만 바이얼린의 모든 속성을 큼직큼직하게 나타낸 이 그림은 감동을 주는것이다. 가슴과 마음이 크게 열려있는 아이들만이 이런 그림을 그릴수 있다. 그 그림이 감동을 주는것은 순수성 때문일 것이다. 어린 아이의 맑은 동심이 표현한 그림의 세계는 그렇게 강열한 것이다.
재주도 있고, 묘사력도 뛰어나지만,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애들이 있다. 일을 저지르지 못하는 것이다. 조심하고 또 조심하고 행여 지금까지 그려놓은 부분들이 덧칠때문에 망가지지 않을까 노심초사 하는 애늙이가 그들이다. 그런 아이들 뒤에는 '호랑이 엄마' 가 있다. 학원에서 학원으로 애들을 몰아부치는 무서운 엄마다. 자칫 작은 잘못이라도 저지르면 호되게 야단맞는 애들이 그들이다. 특히 남자애가 그렇게 큰다는 것은 비극적이다. 애들은 넘어지면서 큰다. 무릎도 까지고, 팔에 상처도 나면서 크는 것이다. 땅바닥에서 뒹굴기도 하면서 자라는게 애들이다. 그런 애에게 값비싼 비단옷을 입혀놓고 흙이 조금만 묻어도 야단친다면 그건 노예와 하나도 다를게 없다. 재주는 뛰어난 애가 틀릴까봐 그림을 제대로 못 그리는것을 보면 정말 안타깝고 가슴 아프다.
아내의 화실에 오는 애들은, 평균적으로 볼때 학업성적도 우수한 애들이다. 그리고 그림을 정말 좋아하고 그림 그리기를 즐거워하는 애들이다. 그런데 이런 애들중에도 발군의 실력을 나타내는 애들이 있다. 그림도 뛰어나게 잘 그리고, 숙지도도 높다. 특히 다른애들과 크게 다른점은 그 '끈기' 다. 표현력도 좋지만 아내의 설명을 귀담다 듣고, 결국 자기의 노력으로 그림을 완성한다. 영재교육을 받고있는 애들이 그들이다. 다른 아이들과의 가장 큰 차이는 그 가정적 배경이다. 부모의 교육수준이 높고, 전문직을 가지고 있으며, 경제적 으로도 여유가 있다. 핵 가족으로 살고 있어도 본가(本家) 와의 유대가 깊고, 애들의 행동거지에 절도가 있다. '집안' 이 좋은것이다. 우수한 요소들이 선대로 부터 이어져 오는 가정들이다. 그 애들을 보면서 뿌리와 가정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재삼 느꼈다. 그렇게 자란 애들은 다시 상류계층에 진입하는 것이고 그만큼 보람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인간에게 우,열은 있는것인가. 태생적인 인권에는 우열이 없지만, 그 능력과 기능에서는 우열이 분명하다. 더 잘하는 애가있고, 더 못하는 애가 있다. 여기에 가정까지 우,열이 있어 그것이 세습되는게 세상이다. 이점을 부정하면 안된다. 그건 계층이동과는 다른, 더 근본적인 문제다. 평등(平等) 은 이념(理念) 이지 현실은 아니다. 그건 인간의 우열과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는 반 인간적 정서이기 때문이다. 유사이래 사회주의가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러나 아이들의 우열은 가정교육과 제도교육으로 상당부분 개선할수 있다. 그게 교육의 기능이고 힘이다. 때문에 가정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부모의 언행 하나하나가 그대로 애들에게는 본이 된다. 보고 닮는게 가정교육이다. 같은 나이또래의 애들이, 한쪽은 자기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다른 한쪽은 길가 평상에 모여앉아 화투를 친다. 본대로 하는것이다. 그리고 그대로 커서 서로가 전혀 다른 세계에 살게된다. 한쪽이 장거리 여객기의 비지니스 클래스에서 인터넷으로 업무를 보는동안, 다른 한쪽은 도로공사의 인부가 되어 뜨거운 햇볕아래에서 땀에 범벅이 된채 땅을 파고있다. 그렇게 갈라지는게 우,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