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광복후 우리나라는, 정치적 으로는 민주주의체제를 택했고 경제적 으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를 택했다. 세계는 2차대전 이후 냉전시대를 통해 자본주의(資本主義-capitalism) 와 사회주의 (社會主義-socialism) 경제체제에 대해 가장 확실한 실험을 했으며 사회주의는 두세대를 넘기지 못하고 도미노현상 으로 붕괴, 그 이데올로기가 반 인간적 이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아주 극단적인 사례이기는 하지만 지금의 남북한을 비교하는 것으로 설명은 충분하다. 물론 칼 마르크스의 사상을 자기들의 정치적 입장에 맞춰 변질시킨 공산세계 지도자들의 사악함도 인정해야 하지만 사회주의 이데올로기 자체도 현실에서는 존재할수 없는 이념 (理念) 임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1917년의 볼셰비키 혁명이후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까지 약 2억의 인구가 사회주의 체제에 의해 희생되었다.(북한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특히 스탈린치하의 소련에서 더욱 가혹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갈리는 근간은 개인이 정당한 노력으로 획득한 재화(財貨)에 대해 자본주의가 그 사유재산권(私有財産權) 을 인정하는데 반해 사회주의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데 있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개인의 재산이 생산수단을 통해 재생산으로 확대, 경제 자체가 발전해 나가지만 사회주의는 '내것' 이 아닌 '우리것' 만 있기 때문에 비 효율적인 생산과 더불어 재생산의 인센티브가 없기 때문에 가난이 또다시 가난을 불러 결국은 붕괴된 것이다. 오늘의 남북한을 비교해 보면 두 체제의 속성은 불을 보듯 자명해 진다. (엄격히 말해 오늘의 북한을 사회주의 국가로 분류 하는데는 문제가 많다. 현실적으로 세습왕조(世襲王朝) 에 더 가깝기 때문이며 일당독재의 폭력적 체제이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에 대한 자본주의의 우위는 현실적으로 증명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본주의가 최상의 이념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더 좋은 시스템이 없기때문에 채택된것 뿐이지 결코 최선의 것은 아니다. 봉건제에 이어 나타난 자본주의의 여러가지 장점에도 불구하고 그 폐해를 체험한 서구 선진국들이 사민주의(社民主義)로 선회했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 (지금은 다시 제3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사민주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부정하고 정치적 으로는 의회(議會)를, 경제적 으로는 노동조합을 통하는등 합법적으로 사회주의 이념을 실현하려는 개량사회주의를 뜻한다.
우리의 경우, 한국의 자본주의는 가진자와 못가진자의 첨예한 양극화 현상과 사용자와 노동자의 극한적 대립으로 야기된 불법,폭력적 노조운동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현상은 그 조정과 타개가 어려운 사회문제이며 그런 환경에서 살고있는 우리들에게 '시장경제' 가 가지고 있는 부정적 속성들에 대한 이해와 이에 대처하는 지혜를 요구한다. 자본주의 가장 큰 약점은 생산성은 강한데 분배(分配) 에는 취약한 것이다. 가진자는 더 가지게 되고 없는자는 더 가난해지는 빈부의 문제는 어떤나라 어떤정권도 해결하기 어려운 체제적인 숙제다. 여기에 가진자들의 재화의 취득과정이 불투명하거나 불공정한 것일 경우 자칫 혁명을 부를수 있는 위험까지 있다. 그래서 빈부격차와 그 양극화 현상은 자본주의의 가장 예민한 아킬레스건이다.
자본주의는 어쩔수 없이 물질주의, 물량주의를 가져오며 사람들로 하여금 물신(物神), 배금(拜金) 주의에 빠지게 한다. 돈이 가지는 거의 무한대의 구매력은 모든 현대인들의 우상이다. '돈은 귀신도 부린다.' 는게 그 뜻이다. 결국 물질주의는 돈이 인간을 대체하는 비극으로 치닫게 되고 그 끝은 인간의 비인간화다. 사람이사는 사회에서 사람이 물질때문에 소외된다면 이미 물질-돈이 목적이 된 것이다. 거기에 인간이 설 자리는 비좁기만 하다.
자본주의는 결과를 중시한다. '꿩잡는게 매' 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만 벌면 된다. 그 과정이 어떠하든 주가(株價) 를 올려주고 배당이 많아지면 그 CEO 는 재 위촉되지만 그 반대는 추풍낙엽이다. 그래서 자본주의 시스템은 비정(非情) 하고 비인간적이다. 대기업의 거대한 빌딩은 그 차디찬 대리석 벽면으로 인간의 온기(溫氣) 을 앗아간다. 인정이 발 붙일곳이 없어지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인간을 오염시킨다. 돈에 오염된 인간은 인간미(人間味) 를 잃어버린다. 그리고 그런 인간은 그 심성이 부패해 진다. 안으로 부터 썪는것이다. 재산을 놓고 혈육들이 벌이는 전쟁은 감옥안에서 까지 계속된다. '천민자본주의' 가 그것이다. 큰 돈을 가질수없는 인격이 큰돈을 가지면 반드시 생기는 '돈병' 이 그것이다.
자본주의는 인간으로 하여금 탐욕적이 되게한다. 그 탐욕은 바다로도 메울수 없다고 한다. 그 끝없는 욕망은 결국 파멸을 부르는데도 멈추지 않는다. 없을때는 모르고 살았지만 한번 가져본 그 맛은 인간을 끝없이 자극하여 허망한 세계로 내달리게 한다. 탐욕이 무서운것은 절제가 안되기 때문이며 그것이 본능에 근거하기 때문에 스스로도 제어하기 어렵다는데 있다. 강도짓은 정상적인 방법으로 그 욕망이 채워지지 않을때 저지르는 편법인 것이다. 결국 자기도, 남도 다치는 파국이 된다.
제3의 이데올로기가 나오고, 그것이 자본주의 시장경제보다 낫다는 검증이 될때까지, 우리는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으로 살아갈수 밖에 없다. 다른쪽의 파트너였던 사회주의가 그 모순때문에 붕괴됐기 때문에 더 그렇다. 이제 남은 문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지혜롭게 사는것이다. 그 장점도, 단점도 분명히 알고 이를 인정해야 한다. 또 하나는 자본주의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알면 단점들을 극복할수 있고 선용할수도 있다. 그러나 모르면 강도를 만나듯 당하게 된다. 자본주의를 사는 민주시민은 또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소비자들 이기도 하다. 시장가격을 결정하는 다른 한쪽의 주인공인 것이다. 그점을 활용해야 한다. 시장에 참여하는 길이 그것이다. 개인이 재산으로 가지는 생산수단이 독점적이 되어 분배를 왜곡시킨다면 소비자의 힘으로 거기에 대항할수 있어야 한다. 대표적인 것이 '집단불매운동' 이다. 조금더 적극적인 표현을 쓴다면 '경제' 을 알아야 민주시민이고 자본주의의 소비자라는 얘기다. 자본주의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몇해전, 공항에 나기기 위해, LA 의 새벽길을 가다가 정말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었다. 쇠로된 작은 상자를 실은 손수레를 한 흑인여자가 끌고가고 있었는데 쇠사슬이 그 작은 상자와 흑인여자의 몸을 묶어 연결하고 있었다. 사연인즉, 그 흑인여자는 공중전화기의 동전을 수거하는 전화회사 직원인데 돈 상자를 들고튀는 강도가 많기 때문에 쇠사슬로 몸과 돈 상자를 묶어서 연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건 정말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종말을 보는것 같았다. '돈의 노예' 가 따로 있겠는가. 분명 자본주의는 풍요롭다. 똑같이 인간은 그 풍요의 노예가 될수도 있는게 자본주의 시장경제다. 지금 우리들이 살고있는 시대가 그런시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