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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식사시간.
아내가 어제 여직원에게 건넨 나이론 스타킹의 효과는 즉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같은 음식 이라도 더 좋은 부분으로, 더 많이 갖다주는 것이다. 특히 그 비싸다는 캐비아도 푸짐하게 담아다 준다. 그리고 더 친절해 졌다. 하지만 커피엔 여전히 프림도 우유도 없단다. 고기는 흔한데 우유가 없다는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분명 유통과정에서 물류가 부족했을 것이다. 외화(外貨) 전용상점. 관광객전용버스는, 오늘은 일반 소련인들은 이용할 수 없는 외화전용상점으로 갔다. 이 상점에는 수입상품이 있는것이 아니라 모두가 소련제품 으로서 외화(예;달러)로만 물건을 살 수 있었고 상품의 질도 아주 우수했다. 하나의 예로, 거리에서 행상들이 팔고있는 조잡한 목재인형(여러개의 서로 다른 크기가 속으로 겹쳐져 있는) 에 비해 이곳에서 파는것은 전혀 다른 솜씨의 물건이었다. 결국 조건에 따라서는 이렇게 훌륭한 물건도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한가지 특이한 것은, 이 상점에서는 산 물건을 바꾸거나 물리지 못하는 점이다. 손님이 골랐다가 마음에 안 들어도 억지로 살 수 밖에 없다. 여직원들은 비교적 젊은 아가씨들 이었는데 그 태도는 사무적이고 위압적이고 방관자의 자세다. 거기에는 분명 열등감도 포함된다. 우리는 아주 러시아적인 목판화등, 약200불 어치를 샀는데 러시아 일반 물가와는 물론 우리 수준과 비교해도 아주 비싼 가격이었다. 가게에서 쇼핑을 마친후, 바로 길 건너에 있는 희랍정교회의 [노보디비치] 수도원에 가 봤다. 그렇게 아름다운 수도원이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북한의 경직성에 비하면 모스크바는 역시 유럽쪽 정서가 남아 있는것 같았다. 같은 공산주의라도 그 운영에서 서로 다른 것이다. 월요일이기 때문에 차량도 사람도 많이 거리에 나왔지만 서울과 비교하면 시골수준이다. 군용차량들이 많이 다니고 있었는데 그 육중하고 투박한 설계는 정말 러시아적이다. 시내 곳곳에서는 지하의 수도관 매설공사, 아파트 신축공사, 건물 보수공사등을 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사용하는 장비는 수량도 부족 했지만 정말 비 능율적인 구식이었다. 또 공사속도가 너무 느려서 그 공사들이 과연 끝날 수 있을지 의문이 갔다. 모든 공사가 시공에서 질이 떨어지고 시간이 많이 소요 되는것은 사회주의 국가들의 공통점이다. 경제적인 인센티브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어제처럼 오늘도 점심식사를 하기위해 다시 버스를 타고 호텔로 돌아가야 했다. 시간의 낭비가 정말 아쉬웠지만 식당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달리 방법이 없는 것이다. 호텔과 시내를 오갈때 호텔 가까이에 있는 평범한 건물앞 길에는 사람들이 꽉 차 있는게 보인다. 물어보니 그 건물은 감자등 극히 제한된 종류의 식품을 살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그 건물 앞에있는 사람들의 줄은 너비 30 미터 정도의 길을 완전히 메우고 있고 겹겹이 꾸부러져 있는 독특한 형태이며 아침에 나갈때나 저녁에 돌아올 때까지 줄어드는 법이 없다. 사람들은 바뀌겠지만 수용와 공급이 맞지않는 악순환의 현장인 것이다. 거의 하루종일 감자 몇알을 사기위해 줄을 서 있어야 하는 인민들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가까이 지나면서 보는 그들의 얼굴에는 전혀 웃음이 없다. 모두가 이미 오래전에 웃을을 빼았긴 사람들 같았다. 굼 백화점. 점심식사를 마친 후에는, 크레믈린 맞은편에 있는 소련최고의 [굼 백화점] 에 갔다. 호텔을 나와 버스를 향해 가고 있는데 러시아인 소년들이 달라 붙으면서 껌을 달라고 손을 내민다. 그것은 꼭 6.25 전쟁때의 우리들 모습이었다. 동구권의 종주국 소련의 수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현실은 그랬다. 굼 배화점. 우선 그 출입문은 나같이 건장한 남자가 밀고 들어 가기에도 무겁고 육중한 커다란 쇠문 이었으며 그것은 들어오는 손님을 거부하는 문이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첫눈에 그 더럽고 낡은 내부가 들어왔다. 진열된 물건들은 보잘것 없는 조잡한 것들 이었으며 우리 기준으로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저렴한 가격, 그러나 모스크바 시민들중 굼 백화점에 들어갈 수 있는 숫자는 아주 적다는 것이다. 그들 에게는 그만큼 그 백화점의 물가가 비싸기 때문 이라고 한다. 러시안인들 속에 섞여서 걸어보고, 같이 줄을 서고 물건을 사면서 느낀점은 그들은 아주 친절하고 정직한 사람들 이라는 것이었다. 혹시 우리가 물건을 사고 몰라서 루불지폐를 많이 내면 하나 하나 계산해서 정확한 금액을 알려줬고 거스름돈도 알아들을 수 있게 숫자를 세어 보이면서 내줬다. 그들의 그 성실하고 품위있는 태도는 앞으로 이 나라의 큰 자산이 될 것이다. 백화점 안에서 가장 긴 줄이 서 있는곳은 역시 생필품과 화장품 코너였다. 상품들의 조악성은 우리의 30여년 전으로 생각하면 거의 비슷할 것이다. 굼 백화점 안에서 화장실을 찾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어렵다. 표시는 있는데 그쪽으로 가 봐도 찾을수가 없다. 할수없이 계단에 앉아있는 노인에게 물어봤다. tahanat 비슷한 발음으로 뭔가를 얘기 했으며 [다운 스테어] 라는 영어를 할 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계속 손짓으로 백화점의 아래층 으로 내려가서 끝쪽으로 가라고 했다. 결국 아래층의 건물 끝쪽에 가서야 화장실을 찾았는데 무섭게 생긴 노인들이 그앞에 버티고 서서 사용료를 받고 있었다. 그 화장실은 더럽고 냄새가 진동했다. 가난과 더러움이 같이 있을때, 그곳은 가장 낙후돼 보이는 법이다. 소련도, 굼 백화점도 그랬다. 삼층건물의 굼 백화점은 우리 기준으로 볼때 어느곳에도 존재 할 수 없는 매장이었다. 아내는 자기와 동생을 위해 진홍색 털실로, 손으로 짠 수제품의 아름다운 스웨터를 2개 샀다. 2개의 값이 5불정도, [수제품] 값으로는 믿어지지 않는 가격이다. 그런데 그 상품을 싸주는 포장지나 비닐백이 없기때문에 또 다른곳에 가서 비닐백을 사 와야 했다. 한편, 나는 할머니 한분에게 러시아 정교회를 아름답게 그린 목판화 한개를 샀는데 그 할머니는 두꺼운 마분지로 그것을 싼후 투박한 노끈으로 묶어줬다. 우리는 다리가 아팠지만 오늘의 소련을 더 구체적으로 체험하기 위해 굼 백화점의 1.2.3 층을 모두 걸어서 다녀봤다. 현재 굼 백화점에 나와있는 거의 모든 상품은 국제경쟁력 기준에서는 상품가치를 가질 수 없는 조잡한 수준이다. 이로 미루어 북한의 사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소련이 일반상품에서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우선 사람들이 [경제 mind] 를 가질 수 있어야 하며 시장경제의 [맛] 을 체험해야 한다. [능력껏 일하고 필요한 만큼 가져가는] 사회주의 시스템 으로는 회생의 가능성이 거의 없다. 지금 모스크바의 [철시상태]가 그 종점인 것이다. 이들도 노력과 이윤의 법칙을 깨달아야 이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늘 가방 한두개를 들고 다니며 언제 어디서나 끝이 없는 줄을 서야하는 궁핍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한마디로 그것은 체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최선의 시스템은 아니지만 적어도 아직까지는 더 효율적인 [틀] 이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소련을 비롯, 동구권 전체가 사회주의 시스템을 버리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이 반 인간적인 이데올르기로는 먹고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페레스트로이카] 는 그 시작 일수도 있다. 평양식당. 여행사 직원 유리는, 모스크바에 북한이 직영하는 [평양식당] 이 있다고 했고, 우리는 저녁에 그곳에 가기를 강력히 희망했다. 우선 예약부터가 어려웠다고 했다. 우리가 남쪽 사람들 이기 때문, 그러나 그들도 막강한 국영여행사를 끝까지 거절 할수는 없었을 것이다. 저녁 7시 20분경, 평양식당의 기와를 올린 대문은 입구가 좁고 침침했다. 내부는 더 좁고 어두웠다. 배정된 식탁에 앉았는데 전등은 켜있지 않고 대신 촛불이 있었다. 칸막이 한 다른 방에는 환한 전깃불이 켜져 있었고 여러명의 동무들이 앉아 있었다. 우선 우리를 좁고 어두운 방에 갈라앉게 한것도 못 마땅했지만 어두운 조명으로 차별 하는것도 정말 치졸해 보였다. 나는 종업원에게 정식으로 항의, 조명을 켰는데 역시 어두웠다. 그들이 여러가지로 차려낸 한국음식 식단은, 이미 러시아화(化)한 국적 불명의 얼치기 였고, 음식들은 맛이라곤 하나도 없었으며 값은 엄청나게 비쌌다. 특히 제일 나중 내온, 그들이 자랑하는 [평양냉면] 도 냉면광인 아내가 한입 먹어보곤 그릇을 앞으로 밀어내는 수준이었다. 그건 그냥 당면 국수였다. 그래도 나는 며칠만에 먹는 그 국수를, 오직 국수라고 생각하고 다 먹었다. 친절한 러시아인 종업원은 [간장] 을 갖다 달라고 하자 [고추장] 을 가져왔으며 [평양식소스] 라고 계속 우긴다. 식사도중, 가끔씩 나타나서 안쪽으로 들어가는, 싸구려 양복과 김일성 배지를 달고있는 동무들은 아주 사나운 시선으로 우리를 노려보곤 했으며 그것은 정말 가슴아픈 일이었다. 왜 그들은 가까이에 와 있는, 여행중인 동족을 그토록 필사적으로 피하고 있는가. 이유는 분명 피하는 쪽에 있는 법이다. 경직되고, 획일적이고, 시골티가 묻어나는 그들은 언제까지 정말 자기들 식대로 살 수 있을까. 지금 바깥세상은 얼마나 무섭게 변하고 있는가. [고립주의] 의 끝이 [괴멸] 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언제쯤 깨달을 수 있을까.(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