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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일정을 마치고 돌아왔을때,
우리는 샤워로 몸을 씼으면서도 호텔이 제공하는 타올은 쓰지 않는다. 안 쓰는게 아니라 쓸 수 가 없기 때문이다. 아내의 표현을 빌면, [그 타올로 몸을 닦았다간 피부가 전부 벗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거칠고 조악했다. 이런 정도의 정보는 가지고 여행을 준비했었기 때문에 타올과 두루마리 화장지는 쓸 만큼 가지고 왔고 지금 그것들을 쓰면서 견디고 있는 중이다. 오늘 저녁에는 여행사 직원인 유리씨가 우리방 까지 같이왔다. 시 와 산문 4가지를 녹음해 달라는 부탁 때문이었다. 다 낡아빠진 일제 소니 카셋트에 밧데리 상태도 안심할 수준은 아닌것 같다. 그는 그걸 내게 주면서 녹음을 부탁했다. 이곳에서는 제대로 된 1.5 볼트 짜리 작은 밧데리도 쉽게 구할수가 없다고 한다. (나는 귀국후 그의 주소로 [한-러 사전] 한권과 1.5 볼트짜리 밧데리 한 상자를 보내줬다.) 그가 내게 녹음을 부탁 하는것은 북한 사투리가 아닌 표준어를 배우고 싶고 자기가 듣기에 내 발음이 아주 정확하기 때문 이라고 했다. 그건 힘든 작업 이었지만 그의 열의가 대단했고 북한 사투리에 비해 표준 한국어가 얼마나 세련된 것인지 알려주기 위해서도 해야 할 일이었다. 나는 그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자연스러운 것] 이라고 말했고 그도 깊이 동감한다고 했다. 스스로 자기가 [공상당원] 임을 밝힌 이 청년은 우리부부가 보기에도 여러가지 자질이 뛰어난, 우수한 러시아인 이었다. 지금 이곳에서는 외국인 관광객과 접촉 할 수 있는 국영여행사 직원이 아주 인기가 있고 수입도 좋기 때문에 선망의 대상이라고 했다. 그리고 내일은 비행장의 관제탑 요원들과 조종사들이 임금인상을 위해 24시간의 제한파업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지금의 형편대로 라면, 우리의 [우즈베키스탄] 행도 12시간 정도는 지연 될 수 있다고 했다. [페레스트로이카] 는 소련안에서 [파업] 이라는, 있을 수 없는 돌출 집단행동까지 일어나게 하고 있었다. 유라씨가 방을 떠날때 아내는 아이들을 위한 과자와 부인을 위한 나이론 스타킹을 그에게 건넸다. 그는 한사코 안 받으려고 했지만 우리의 강권에 가지고 갔다. 정말 성실하고 예의바른 소련 청년이었다. 그가 떠난후, 나는 침대위에서 등을 기대고 편하게 앉아 녹음을 시작했고, 지루하고 어려웠지만 꾹 참고 오랜시간의 작업으로 그가 원하던 녹음을 마쳤다. 그리고 말미에 유라씨의 한국어 실력이 표준어로 향상 되기를 바란다는 말까지 녹음했다. 이를 지켜보던 아내는 [어나운서] 보다 더 잘했다고 격려했다. 도모체도브. 총파업은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아침에 식당에서 유라씨는 이 소식을 전하면서 식사후 바로 공항으로 갈것 이라고 했다. 모스크바에는 5개의 일반 공항이 있다고 했으며 국내선 전용으로는 우리가 도착한 [도모체도브] 공항이 가장 크다고 했다. 그러나 그 공항의 바라크식 건물은 우리의 6.25때를 연상케 하는 것이었으며, 내부의 낙후성은 제대로 설명 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대합실의 불결과 다 낡아빠진 벤치들, 깨진 유리창 문에는 비닐이 걸레처럼 붙어있었다. 그리고 화장실, 거긴 대소변이 흘러넘쳐 바닥 전체가 오물로 뒤덥혀져 있어 발을 디딜수 조차 없었다. 우리가 도착했던 국제공항 S-2 는 여기에 비하면 최고의 시설인 셈이다. 인간이 어떻게 환경을 이렇게 해 놓고 살 수 있는 것일까. 그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슬라브족이 본래 이렇게 더러운 것인지 이데올르기가 그들을 이렇게 만든 것인지 분명 둘중 하나일 것이다. 세계 어디에도, 아무리 후진국 이라도 이렇게 더러운 공항은 없다. 우리가 받은 탑승권은 보통 종이로 만든 어설픈 것이었는데 계속 회수해서 재 사용하기 때문에 낡고 더러웠다. 우리는 일단 여기서 유라씨와 헤어졌다. 그리고 타시겐트와 레닌 그라드를 거쳐 다시 모스크바에 돌아왔을때 만나기로 했다. 자세한 일정과 시간은 국영여행사에 있는 그가 다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에로풀로트 의 일류신 여객기. 비행기 탑승은 셔틀이 없기 때문에 바람부는 들판을 짐을 가지고 걸어가야 했다. 비행기에는 동체 중간 아래부분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 계단으로 올라가니 거긴 크고 컴컴한 창고였다. 일단 거기에서 큰 짐은 짐칸에 넣은후 한층을 더 올라가야 객실인데 계단 양쪽 난간에는 위압적인 늙은 소련 여인들이 눈을 번뜩이면서 손님들이 휴대하는 작은 짐들을 체크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든 나라의 모든 비행기 에서 휴대가 허용되는 작은 카트가방 까지도 안된다는 것이었다. 꼭 군대의 병영같은 분위기였다. 모스크바 발, 타시겐트 행 [아에로풀로트] 의 [일류신] 여객기의 객실에 들어 섰을때, 가장 놀라웠던 것은 코를 들 수 없는 지독한 냄새였다. 그것은 빠리-모로코간을 운행하는 비행기의 객실보다 몇배 더 지독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객실은 너무 우중충했고 흡사 만화영화에 나오는 엉터리로 만든 우주선의 내부 같았다. 그리고 여러 종족들이 섞여있는 승객들의 무표정과 남루한 의복, 그 모든것은 한마디로 어떻게 표현 할 수 없는 다른 세계였다. 소련은 국토가 넓기 때문에 항공 교통편이 발달해 있고 사회주의 국가답게 탑승요금도 아주 저렴 하다고 했다. 그러나 낙후된 위성국이 많기 때문에 모든 국내선 여객기의 객실은 비슷한 사정이라고 했다. 그래도 유라씨의 그런 설명보다 사정은 더 나빴다. 비행기가 이륙한 잠시후, 음료수를 한잔씩 갖다 주는데 그 컵은 이미 우리주변 에서는 사라진, 거무티티한 프라스틱 제품 이었으며 컵을 담고있는 쟁반도 때가 까맣게 낀 전시대의 것이었다. 우리는 도저히 그 음료수를 마실수가 없었다. 그리고 점심시간의 기내식. 그것은 한 마디로 [대한민국 국민] 인 우리들 에게는 수용소군도의 급식 수준이었다. 예의 그 거무티티한 불결한 쟁반에 접시도 없이 그로데스크한 닭고기 한조각. 통채로 올려놓은 커다란 생 오이 하나, 검은빵 한 조각과 딱딱한 치즈 두 조각, 그리고 커피와 설탕, 과자 하나. 그게 전부였다. 차마 손을 댈 수가 없었다. 우리는 오이를 집어들고 먹어봤다. 그런데 그 소련오이는 정말 맛이 좋았다. 주변을 보니 모두가 정신없이 게걸스럽게 먹고 있다. 소련과 그 위성국들은 상당기간 아주 어렵겠다는 생각을 안 할수가 없었다. 내 옆 자리에는 공무원 인듯한 중년 남자가 앉아 있었는데 그 역시 금방 쟁반을 비운다. 나는 내 쟁반을 들어서 그에게 건네 주려고 하자 잽싸게 받아 가서는 순식간에 전부 먹어 치운다. 인간이 음식에 굶주리고 산다는 것은 정말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객실에는 계속해서 시끄러운 음악이 나왔으며 강철같은 여자 목소리의 어나우스먼트가 나왔다. [비행문화] 가 전혀 없는 삭막한 사막 같았다.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화려한 비행기들을 타고 다녔었는지 비로서 깨달았다. 초루스 호텔. 3시간 30 여분의 비행끝에 타시겐트 공항에 착륙했다. 놀라운 것은, 비행기 에서 공항청사까지 셔틀이 운행하고 있었는데 그건 군용의 대형 트레일러(탱크등을 싣고 다니는)위에 컨테이너 박스로 지은 집이었다. 세상에 그런 셔틀은 처음 봤다. 그래도 청사는 모스크바에 비하면 작지만 깨끗했다. 짐을 찾는데 40 여분이 더 걸렸다. 우리를 기다리는 국영여행사 직원과 함께 다 낡아빠진 소형버스를 타고 호텔로 향했다. 국영여행사 Intourist 가 지정한 곳은 타시겐트의 Chorsu 호텔, 이곳에서는 가장 큰 숙소라고 한다. 도착해서 입구에 들어서니 로비가 없고 바로 엘리베이터를 타는 공간 이었다. 회교지역 답게 노인들이 그 특유의 둥근모자를 눌러쓰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 건물은, 우리가 체류하는 동안 무너 질수도 있는, 형편없는 시공이었다. 안내된 방은 우리나라 3류 여인숙 수준, 도무지 몸을 붙일데가 없다. 단 한번도 청소한 일이 없는, 습기로 축축한 침대, 더럽고 축축한 침구. 카바없이 달려있는 알 전구, 샤워를 할 수 있는 시설은 없었고 아주 구식인, 좌변기가 있는 화장실. 좁고 더러운 방, 걸레로도 쓸 수 없는 낡은 타올. 방에는 나방이 까지 날아 다니고 있었다. 이곳은 정상적인 인간이 몸을 쉴 수 있는 장소는 아니었다.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시겐트, 가장 좋다는 호텔의 현주소가 그랬다. 모스크바에서 타시겐트로 떠나기 전, [도모체도브] 공항에서 탑승을 기다리고 있을때, 막 타시겐트에서 비행기가 도착했고, 승객들은 각자의 짐을 챙겨들고 청사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중에 미국에 살고있는 동생내외가 있지 않은가. 우리는 서로 놀랬고, 반가웠다. 시간이 많지않아 긴 얘기는 나누지 못했지만 타시겐트의 초루스 호텔이 얼마나 열악한지를 거듭 얘기하면서 놀래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도착해 보니 상황은 더 나빴다. 이번 여행의 목적이 분명한 만큼 반드시 참고 견뎌야 했고, 달리 방법도 없었다. 세상에 이런곳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