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기글올리기. by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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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준씨는, 재미교포로서 미국의회의 하원의원을 지낸분이다. 한국인 으로서 미 연방의회에 진출한 첫 케이스로서 화제의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금년8월, 국내 한 주간지와의 인텨뷰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 ‘한국은 겉만 번지르르하지 하수처리는 미국에 비해 70, 80년 뒤졌다. 여름에 서울거리를 걷다보면 음식쓰레기 냄새가 엄청나다.“ 썪은음식에서 나는 냄새를 악취(惡臭)라고 한다. 물건이 썪는, 불쾌한 냄새나 구린내를 이르는 말이다. 그래서 ‘악취가 코를 찌른다’ 고 표현한다. 선대들이 남기신 말씀중에 ‘악취나는 물건은 비단보자기로 싸도 냄새가 난다’ 는게 있다. 그래서 악취-나쁜냄새는 우리의 취약점 이기도 하다. 또 한가지는 냄새는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만큼 고약한게 악취이기도 하다. 빠리에서 ‘마그레브’ 지역으로 가기위해 비행기를 타면 벌써 ‘아랍냄새’ 에 압도 당한다. 때문에 마그레브 지역에 투입된 비행기는 다른노선 취항이 불가능 하다고 한다. 따라서 가장 오래된 낡은 기종들이 이 노선을 취항하고 있다. 한번 밴 그 특유의 냄새는 무엇으로도 없앨수 없기 때문이다. 냄새-악취는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대통령에 대한 정부 각부처의 2010년도 정례업무보고는 12월 10일부터 30일까지 실시된다. 이번 업무보고에서 특이한 점은 모든 부처가 ‘국격(國格) 향상’ 과 ‘개선방안’, G20 정상회담에 대비하는 국격 업그레이드가 그 핵심내용들이다. 인격-人格 이 사람에 대한 품격, 품위라면, 국격-國格 은 나라의 품격과 품위다. 더 직접적 으로는 곁으로 보이는 量이 아니라 안에서 보여지는 質의 수준, 곧 문화수준을 의미하는 말이다. 형식에 대한 내용의 수준이라고도 할수있다.
우리나라는 1996년 12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정회원으로 가입했다. 세계 부자클럽의 일원이 된 것이다. UN회원국 200여 국가중 OECD회원국은 30개 국이다. 더 중요한것은, 12월25일자로 OECD 안의 DAC(개발원조위원회)의 정식멤버로 가입하게된 것이다. 주요선진국 22개 나라가 가입돼있는 DAC는 전세계 대외원조의 90%를 담당하고 있으며 우리가 그 일원이 된다는것은 국제사회로부터 진정한 ‘원조선진국’ 으로 인정받는 깊은 의미가 있다. 세계 제2차대전이후 원조를 받던 나라로서 원조하는 나라가된 국가는 한국밖에 없다. 생각해 보면 감개무량한 일이기도 하다. 그 외형에서 대한민국은 국제적으로 모든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된 것이다. 이제 문제는 그 겉모습에 걸맞는 안을 다지는 일이다. 수도의 거리에서 썪은음식 쓰레기의 악취가 나는 수준으로는 안된다. 그동안 우리속에 배어있는 ‘악취들’ 을 제거할때가 온 것이다. 명실상부한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이 냄새의 정체를 알아야 하고 이를 없애기 위해 모두가 비상한 노력을 해야한다.
국회 안경률 의원은, 한나라당 소속의 3선의원이다. 언론은 그를 ‘국격높이기 전도사’ 라고 부른다. 3선의원을 지내는 동안 여러 가지 자료들을 분석해 보니 우리사회의 부끄러운 모습이 심각한 단계에 이른것을 발견했고, 국감때는 물론, 평소에도 여러 가지 자료들을 모으기에 힘썼다. 이번에 그동안 모은자료 라면상자 10개 분량을 정리, 자신의 의정활동비 3000천만원으로 ‘성숙한 사회, 선진일류국가과제 Wrost 12' 라는 유인물을 2만부 제작했다.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 시민단체, 학교, 기업체등의 고위관계자 에게만 배포된다. 일반인을 제외한것은 자칫 ‘정치홍보’ 논란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안의원 사무실의 양창균 보좌관에게 전화해서 꼭 한부를 얻고싶다고 부탁했고 며칠전 우편으로 그 자료를 받아볼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자료중에는 보통사람 으로는 접근하기 어려운 소중한 것들이 많았으며 안 의원이 이 문제에 대해 가지고 있는 열의와 각오도 이해할수 있었다.
안경률의원은 그 유인물에서, 우리의 악취를 12개의 카테고리로 정리했다. 디테일이 분명하기 때문에 쉽게 납득이 가는것은 물론, 문제들의 핵심을 이해할수 있는 소중한 자료들이었다.
1. 기초질서의 실종, 질서는, 사회가 올바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지켜야할 일정한 차례나 규칙이다. 차례를 기다리는 대표적인 행위가 줄서기다. 이 질서가 붕괴되는것은 언제나 ‘새치기’ 때문이다. 새치기가 응분의 벌을 받지않기 때문에 근절이 안되고 있는게 지금의 우리사회다. 대표적인 새치기가 ‘경법죄’ 의 증가다. 2004년에서 2008년의 4년사이에 경법죄 단속건수는 162%나 증가했다. 이웃 일본에 비해 44배가 많은수치다. 경범죄의 증가율과 사회의 무질서는 같이가는 현상이다. 악취중의 으뜸이 기초질서의 실종임을 우리모두가 아픈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2. 세계 최고, 최악의 교통사고. 2007년기준, 1Km 당 교통사고 발생건수에서 한국은 2.09건으로 OECD 회원국가중 최고다. 자동차 1만대당 교통사고 발생건수도 한국은 112.9건으로 세계최고다. 교통사고 직접비용도 피해가족의 정신적 피해부분을 합해 20조원에 이른다. 직접비용만도 14조 6천억원 수준이다. 한국은 이제 막 자동차 1.5세대에 이르고 있으며 아직까지 운전문화가 정착되지 못하고 있는게 사실이다. 수도 서울에서 자기차를 운전하고 다니는 외국인은 없다. 그만큼 위험하다는 뜻이다.
3. 시위, 떼법의 공화국. 1999년부터 2008년까지의 통계를 보면, 집회시위는 117.899건으로 하루평균 32.2건의 시위가 있었으며 이중 불법시위가 1.084건, 경찰부상자는 5.245명이다. 주요도시 인구 100만명당 집회시위건수를 비교해 보면, 2007년 기준, 서울 736. 홍콩 548, 워싱턴 207, 파리 186, 동경이 59건이다. 가히 시위공화국이라고 할만하다. 특히 불법폭력시위와 강성노조의 불법파업은 세계최고 수준이다. 쌀값을 정부가 책임지라는 농민들의 생떼쓰기까지 시위가 잘날이 없다. 무엇이 소모되고 있는지 생각할때가 됐다.
4. 공부집행 방해사범. 2004년의 8,106건에서 2008년은 15,646건으로 93%가 증가했다. 공무집행을 방해 한다는것은 ‘공권력’ 에 대한 심각한 도전인 셈이다. 국립경찰이 안고있는 내부적인 문제와는 별도로 ‘경찰력’ 은 치안의 최일선을 담당하는 국가조직이며 힘이다. 이 기능이 시민에 의해 방해받고 공격받는다면 이는 국가가 위기에 처해있다는 뜻이다.
5. 조직폭력배 증가. 조직폭력배는 영세상인과 유흥업소를 대상으로 돈을 갈취하며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물론, 사행성 불법영업까지 하고있다. 2004년의 3.203명에서 2008년엔 5.411명으로 69%가 증가했으며 경찰의 관리대상인 전국의 조폭조직원 수도 2004년 207개파 4.601명에서 2008년 221개파 221개파 5.413명으로 17.6%가 증가했다. 사회불안 요인의 증가인 것이다.
6. 에너지 소비증가율. 1998년에서 2007년까지의 주요국 1인당 에너지 소비 증가율을 대비해 보면 미국 -1%, 일본 1.7%, 영국 8.5%, 독일 3.8%, 멕시코 15.4% OECD 평균 2.2%. 한국은 33%로 세계최고이며 놀랄정도의 높은수치다. 에너지 수입액은 1998년 183억달러에서 2008년 1.415억 달러이며 (170조원) 이는 2008년기준, 국가예산의 60%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국가 총수입액중 32.5%에 해당되며 우리의 에너지 의존도는 96.4%에 이르고 있다. 주요 에너지원별 소비증가율은 1998년/2008년 사이. 석유 12.6, %, 전기 101.2%, 도시가스 129.7%다. 우리의 에너지 소비페턴과 구조가 ‘낭비적’ 이라는 얘기다. 켜놓은채 보지않고 있는 TV가 전국적으로 몇 대가 될까. 전기가 새는 소리가 들린다면 물쓰듯 하지는 못할것이다.
7. 인터넷 시대의 종이사용량. 주요국 1인당 종이소비 증가율(1998/2007) 대만 -8.1%, 미국 -14.4%, 일본 1.4%, 영국 -2.3%, 독일 24.6%, 우리한국은 57.4%다. 정말 엄청난 증가가 아닐수 없다. 1998/2008년간, 펄프수입은 7억5천만달러에서 17억6천만달러로 134.7%가 증가했으며 수입물량도 175만톤에서 249만톤으로 40.3%가 증가했다. 에너지와 함께 과소비된게 인터넷 시대의 종이사용량이다. 당초예상과는 달리 거의 상반된 결과가 아닐수없다.
8. 버려지는 음식. 음식물쓰레기의 1일 발생량은, 1998년 11.797톤에서 2007년에는 14.452톤으로 22.5%가 증가했다. 이는 하루 5톤트럭 2.890대 분으로 연간 105만5천대분의 먹거리가 버려진다는 뜻이다. 음식물쓰레기의 처리비용만도 하루 18억5천만원으로 연간 6.752억원이 소요된다. 버려지는 음식물의 경제적 가치는 약 15조원.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수 없다. 보리고개를 겪은세대가 아직 살아있는 나라로서 무섭고 두려운 일이다.
9. 물부족 압박국가. ‘물쓰듯 한다’ 는 말은 이제 옛 이야기다. 그 누가 한국인이 패트병의 물을 돈주고 사 마실줄 알았겠는가. 만화가 고우영씨는 어린시절 아버지와 함께 배를 타고 한강에서 견지낚시를 할때 점심을 먹으면서 한강물을 그대로 떠 마셨다고 했다. 국토해양부의 장기종합계획을 보면, 우리는 2016년 약2억500만m3 의 용수부족이 예상된다. UN의 분류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연간 1인당 이용가능한 수자원양이 1.488m3로 물부족 압박국가에 해당된다.
10.민생침해범죄의 급증. 불법대부업, 유사수신행위, 다단계방문판매등 불법사금융범죄는, 2006년 1.170건에서 2009년 8월현재 14.465건으로 1.136.3%로 급증했으며, 인터넷 사기도 연간 3만6천건 발생으로 일본의 24배 수준이다.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은, 2006년 1.488건에서 2008년 8.450건으로 증가했다. 제도금융과 유통구조의 기간신용도 하락은 물론, 그 피해액의 증가도 놀랄만 하다.
11.술소비량 세계최고. 국세청신고기준, 연간 주류총출고량은 2004년 292만Kl에서 2008년 307만 Kl로 7조 982억원 이며 연간 위스키 수입액은 1조 5천억원에 이른다. 1인당 연간 술 소비량은, 20도 이상기준 소주 166병을 마시는 셈이며 이는 OECD국가 평균의 5.6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술 권하는 사회’의 음주습관과 음주문화도 바뀔때가 됐다. 2008년기준, 음주운전으로 969명이 죽었으며, 48.497명이 부상으로 후천적인 불구가자 되었다. 우리나라 장애인중 80%이상이 후천적 불구자임은 시사하는바가 크다.
12.인터넷 중독. 무엇에 중독(中毒)되었다는 것은 ‘치료’ 를 받아야 하는 상태다.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고, 잠도안자고, 게임만 하다가 죽은 사람이 그런예다. 정보문화진흥원이 한국정책과학학회에 의뢰해 조사한 바에 의하면, 2008.11-2009. 2 기간중, 청소년 104만명, 성인 96만명이 인터넷에 중독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전체 인터넷인구의 8.8%이며, 청소년중 14.3%, 성인의 6.3%에 해당되는 숫자다. 같은 칼 이라도 주부가 들면 조리용기 이지만 강도가 들면 사람을 해치는 흉기가 된다. 컴퓨터도 마찬가지다. 그건 단지 ‘도구’일뿐이다. 거기에 빠져 중독이 된다는 것은 주인노릇을 하지못하는 약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엄격히 말하면 이상의 12가지 냄새가 우리의 모든 악취를 다 설명하는것은 아니다. 특히 아쉬운것은 가장 반문화적인 ‘소음’ 에 대한 자료가 빠진점이다. 그러나 큰 줄기는 다 잡아냈다고 할수있다. OECD 회원국이기 때문에, G20정상회담이 우리나라에서 열리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일상’ 을 위해 이 악취들은 반드시 제거돼야 한다. 가장 중요한것은 우리에게서 ‘고약한 냄새’ 가 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개선은 국가조직이나 권력이 아니라 국민 개개인의 노력으로만 이루어질수 있다. 때문에 우리의 취약점을 알고 깨닫는것이 먼저다. 안경률의원의 구체적인 자료들은 그래서 중요한 ‘단서’ 가 될수있다. 모든 시작은 단서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 어디에도 선진국으로 가는 ‘샛길’ 은 없다. |
추수하지않은 논을 갈아엎는 퍼포먼스에 이어, 지난 11월 17일에는 전국농민회총연맹, 한국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등 13개 농민단체회원 1만5000명(경찰추산)이 여의도 광장에서 ‘쌀대란 해결, 협종조합개혁쟁취 전국농민대회’ 를 열었다. 이들은, ‘농민들은 생산비도 건지지 못하는데 정부는 사실상 손을 놓은채 쌀값을 시장에 맡기겠다는 무책임한 태도만 보이고 있다' 면서, 쌀소득 보전직불제가 제구실을 하려면 지금의 목표가격인 17만원을 21만원으로 상향조종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지금 시행하고있는 ‘변동직불제’는, 쌀값이 80kg당 목표가격인 17만원에 못미칠 경우 쌀농가 소득보전을 위해 목표가격과 산지쌀값의 차액 85%를 정부가 현금으로 지급하는 제도다. 쌀 직불금이 가장많이 지급됐던해가 2005년으로 1조5000억원이 소요됐다. 그러나 금년의 쌀농사 대풍으로 내년에 소요될 직불금은 그 기록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변동직불제에서 문제가 되는것은 농촌에 논을 가지고는 있으나 도시에 거주하는 부재지주로서, 이들은 직접 쌀농사를 짓지 않으면서도 직불금을 신청하고 있어 직접 농사를 짓는 임대농가에는 전혀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점이다. 거기에 더해 불법으로 직불금을 수령한 사람들도 많다.
1991년 경기도 김포의 통진면과 고양군 일산읍 신석기 토층에서 Japonica 볍씨가 발견 되었으며 과학적분석결과 BC 2000년대의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쌀이 주식이 된것은 최근의 일이며 그 이전에는 피, 기장, 조, 보리, 밀등의 잡곡이 한국인의 주식이었다. 약 1천여년 전부터 벼의 생산량이 증가했으며 분식에서 쌀밥중심의 식생활문화가 생겼다. 쌀은 5-6세기경 까지만 해도 귀족식품이었다. 통일신라의 경우 북쪽은 조, 남쪽은 보리가 주식 이었으며 귀족층만 쌀을 먹었다. 우리나라가 쌀 자급을 이룬것은 1975년으로 통일벼 생산량이 3000천만석을 기록하면서 목표가 달성되었던 것이다. 한편 우리나라의 1인당 쌀 소비량은, 1970년 136kg에서 2008년 76kg 으로 줄었으며, 대신 같은기간 1인당 밀가루 소비량은 26kg에서 34kg으로 늘어나 연간 200만톤 의 밀가루가 소비되고있다. 쌀의 수요가 거의 절반으로 줄어든 것이다. 한편 우리나라의 잡곡 자급비율은 쌀을 제외하면 27% 미달이며 특히 옥수수와 콩의 자급율은 겨우 1% 와 10% 수준이다.
지금현재 세계적으로 쌀시장을 개방하지 않고 있는나라는 필리핀과 우리뿐이다. 우르과이라운드 이후 쌀시장을 개방하지 않는대신 쌀을 수입해야 하는 ‘의무량’ 때문에 쌀의 수요와 공급에서의 폭이 압박을 받고있는게 사실이다. 쌀값이 계속 떨어지는것은 결국 수요와 공급의 문제 때문이다. 수요는 반감했는데 공급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금년의 경우 지난해의 484만톤을 웃도는 대풍으로 50만톤, 350만석이나 더 많아 산지쌀값이 크게 하락, 풍년빈곤이 재현되고 있다. 쌀이 한국의 대표적인 식량이라 해도 수요와 공급 이라는 시장경제원칙에서 예외인것은 아니다. 지금의 쌀값문제는 쌀의 ‘경제학’ 을 무시한 정치적 땜질이 부른 재앙이다.
김영삼 정부시절, 농어촌구조개선대책(1992-89) 과 농촌발전계획(1999-2003) 에 68조 8000억원의 세금을 쏟아부었다. 2010년도 국가예산규모가 292억원임을 감안할 때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짐작 할수 있을것이다. 이렇게 큰 돈을 쓰고서도 농촌의 형편이 전혀 개선되지 않은것은 ‘정책’ 의 이름으로 돈-현찰이 뿌려졌기 때문이다. 그건 ‘표’ 때문이었다. 결국 돈은 사라지고 농촌문제는 그대로 남았다. 그래서 정치가 농촌을 망쳤다는 얘기는 진실이다. 다른 한가지는 우리의 쌀값이 가지는 경쟁력 문제다. 외국쌀에 비해 같은 품질에서 5배까지 비싸다. 소비자들이 값이싼 수입쌀을 사 먹는것 만큼 국내산은 다시 재고가 된다. 쌀을 경제적인 측면이 아니라 정치적인 측면에서, 그리고 국민정서라는 애매모호한 보호막으로 시장에서 격리시킨것이 문제를 커지게 한 원인이다. 안에서 곪기시작, 이제는 수술해야 하는 단계에까지 오고야 말았다. 그대로 두면 고름이 온몸으로 퍼져 죽게된것이 지금의 쌀농사다.
예를들어 ‘변동직불제’ 의 경우, 시세차액의 85%까지 정부가 보전해 주는것은 ‘형평의 원칙’에서 크게 어긋나는 일이다. 그돈이 국민의 혈세, 세금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고기를 많이 잡지못한 어선에 대해서도, 악천후로 농사를 망친 과수원도, 연료비가 올라 단가압박을 받고있는 화훼농사에도, 장사가 안돼 파리를 날리고 있는 식당에도 똑같이 목표수입의 차액 85%를 줘야 하는것이 아닌가. 어떤 경우에도 세금을 그렇게 쓸수는 없다. 이제 농촌도 ‘온실의 과보호’ 를 졸업할때가 됐다. 글자그대로 ‘시장’ 에 맡기는 것이다. 같은 작물이라도 쌀 이외의것은 전부 시장에 노출돼 경쟁하고 있는데 유독 쌀만 과보호 할 필요가 없다. 스스로 경쟁력을 가지지 못하면 끝까지 국민의 혈세로 땜질하게된다. 뼈아픈 진통을 겪더라도 한번은 넘어야 할 고비가 그것이다. 언제까지 변동직불제를 고수할수는 없지않는가. 시세가 폭락, 배추밭을 갈아엎었다 해도 그 손해를 보존해 주지않는게 그런예다. 그래도 해마다 배추농사는 짓고있다.
이제는 쌀 생산을 위주로 했던 농업정책도 바뀌어야 한다. 쌀농사가 과잉상태라면 수입의존도가 높은 콩이나 옥수수등 잡곡을 재배해야 한다. 정지가 잘된 논이나 수리안전답은 계속 쌀을 재배하되 경작여건이 나쁜곳에는 대체작물을 심는것이다. 5만ha만 조정해도 약25만톤의 물량을 줄일수 있다고 한다. 수입개방에 대한 시한이 다가오고, 국내의 쌀 소비량도 계속 감소하고 있는것을 안다면 이미 농민들 스스로가 어떤 결단을 내려야 했으며 농협의 기능과 역할이 여기에서 살아있었어야 했다. 그러나 농협은 이미 죽으지 오래다. 도대체 언제까지 남아도는 쌀값을 정부가 해결해 줄것으로 믿고 있을것인가. 농촌은 너무나 안이했다. 이미 모든 농촌의 쌀농사는 ‘기계화’ 되어있다. 아무리 큰 논이라 해도 세사람이면 모든 일을 다 해낸다. 파종에서 비료주기, 추수까지 전부 기계가 하고있다. 이미 ‘기계영농’ 이 현실이라면 이제는 시장성이 있는 재배품종으로 바꾸는 일만 남은셈이다.
우리나라 농민들이 재배하는 벼 품종은 280여종에 이른다. 그중 2006년부터 선을 보이고 있는 산호, 금탑, 노른자찰 의 3가지 품종은 갈색 빛깔에 ‘가바-gaba'라는 물질을 풍부하게 포함하고 있다. 이 품종은 뇌세포의 대사기능을 촉진하고 혈압저하와 당뇨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4개 국내대학에서 함께 가바쌀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 일반현미보다 8배, 흑미보다 4배가 많은 가바성분이 검출됐다. 1kg 의 가격은 일반무농약 쌀보다 17-24%가 높은 3000원수준이다. 품종개량과 쌀 고급화의 시범케이스가 될수있다. 앞으로 정부가 정책적으로 지원해야할 쌀 농사는 바로 이런것이다. 전북 군산시 회현면 금관리에는, ‘가나안 영농조합’ 이 있다. 61개 농가가 참여, 24만평에서 ‘오색미’ 를 생산하고 있다.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홍미, 황미, 녹미, 흑미, 백미는 1kg 의 가격이 1만원으로 일반쌀의 5배 가격이다. 금년에 약 200톤을 생산, 10억원의 수입을 기대하고 있으며 이미 단골고객 4000여명과 직거래를 하고있다. 같은 쌀이라 해도 개량품종을 재배, 높은 단가를 받음으로 ‘시장’을 통해 거듭나는 농촌케이스인 것이다. 어려움도 많이 겪겠지만 길게보면 그게 사는 길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땜질하는 정치적 처방은 결코 오래갈수가 없다. 또 그래서도 안된다. 이제 농촌도 눈을 크게뜨고 그 생각을 바꿔야 한다. 시장이 없는 상품을 아무리 만들어 봐야 팔리지 않고, 단가가 내려가면 그걸로 끝인것이다. 어찌 쌀이라고 예외일수가 있겠는가.
쌀문제에 접근하는 정부의 ‘정책’도 바뀌어야 한다. 농촌을 ‘표’로 보는한 문제의 근본은 해결되지 않는다. 이제는 ‘정책적’ 으로 접근해야 하며 혹독한 시련을 겪는다 해도 그걸 뚫고 나가야 한국의 농촌도 ‘자생력’ 을 가질수 있다. 쌀문제는 반드시 그렇게 해결해야 한다. 이웃 일본은, 쌀생산량이 일정비율을 초과하면 그 물량을 가공용과 사료용으로 사용하는 것을 명문화한 ‘집하원활화 정책’ 을 제도화 했다. 작황이 좋아 초과생산량이 많아도 그 물량은 시장에서 격리되기 때문에 농민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수요와 공급의 적절한 균형을 제도로서 유지하고 있는것이다. 우리도 초과물량에 대해서는 가공용, 사료, 주정용등으로 쓸수있도록 제도화 함으로서 농가의 수입과 쌀시장 안정을 동시에 도모할수 있다. 초과물량에 대한 확실한 격리와 일정부분의 대채작물 재배를 병행한다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수 있을것이다. 여기에 농민들의 상품특화 노력이 합해진다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뉴질랜드는 선진국중 유일하게 농업보조금이 없는 나라다. 1984년 농업보조금은 농업예산의 70%에 달했으며 국가예산에서 농업예산은 3.75%에 이르렀다. 이대로 가면 국가재정이 거덜날것은 명약관화했다. 1984년에 집권한 노동당정부는 하루아침에 모든 농업보조금을 폐지했다. 엄청난 정치적 도박이었다. 여러곳에서 보조금 중단을 반대하는 격렬한 시위가 일어났으며 심지어는 칼로 양의 목을따는 일까지 있었다. 그러나 롱이 총리와 로저 더글러스 재무장관이 이끄는 개혁정부는 꿈쩍도 하지않고 개혁을 밀고나갔다. 80년대 중반이후, 농업예산은 73%가 감소했고, 전체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0.5%수준이 되었다. 그러나 GDP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4%에서 17%로 올라갔으며 축산농가의 평균소득도 개혁전 4만달러에서 7만1500달러로 늘어났다. 보조금이 끊어진 농민들은 하나같이 스스로 개혁하고 노력해서 자기의 살길을 찾은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낙농업의 세계적인 경쟁력이다. 그리고 천덕꾸러기 농축산업이 효자산업이 되었다.
우리의 쌀농사가 사는길은, 쌀도 시장에서 그 값이 결정되는 길이다. 절대로 다른방법은 없다. 있다면 편법이고 잠시의 속임수일뿐 국민의 혈세만 낭비될 뿐이다. 쌀값을 정부가 책임지라고 외치는 후안무치한 농민들도 반성해야 한다. 앞으로 계속해서 쌀 수요는 줄어들 것이고 곧 다가올 수입유예기간이 끝나면 같은품질의 값싼 외국쌀이 들어올 것이다. 지금부터, 서둘러 준비하지 않으면 경쟁력 상실로 쌀 농사는 초토화된다. 가장 중요한것은 농민 스스로의 반성과 자구책이다. 죽어있는 농협을 일으켜세워 금융부분을 단호히 도려내고 농사에만 전념하는 전문기관이 되게해야 한다. 시장은 냉엄하다.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그 장(場)에서 견디지 못하면 사멸할수밖에 없다. 이제는 ‘쌀’ 도 그 시장에서 살아남을것을 요구하는 시대임을 모두가 알고 인정 해야한다. 그게 한국의 쌀농사가 사는길이다.
모든 시대에는 그 시대가 목표로 하고 이룩해야할 일이 있다. 그것이 곧 ‘시대적 사명’ 이다. 그 시대에만 주어진 요청이 그것이며 모든 시대는 그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시대적 사명은 하나의 사회, 국가에만 국한되는것은 아니다. 탄소배출량을 줄이려는 ‘녹색혁명’은 하나의 국가만으로는 감당할수 없는 전 지구적인 ‘시대적 사명’ 인 것이다. 지금의 우리사회도 똑같이 ‘시대적 사명’ 이 주어져 있으며 그 일을 이루어 내는 정도가 국민의 역량(力量) 이 된다. 선진국이, 살아있는 시민정신이 시대적 요청에 제대로 부응한 사회라면 후진국은 그 반대다. 같은 시대적 요구에 대해 서로 다르게 반응했기 때문이다. 시대적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것은 무엇이 시대적 요구이며 정신 인가를 깨달아 아는것이다. 모르면 어떤 대처도 할 수가 없다.
식민지 시대의 시대적 요구와 사명은 해방과 독립이었다. 수많은 선각자와 선구자들이 ‘대한의 독립’ 을 위해 자기 한몸을 바쳐 독립운동을 한 이유가 그것이다. 8.15 광복이 가지는 의미에서, 지금의 우리가 인정해야 하는것은 그 해방이 우리힘으로 어렵게 쟁취한것이 아니라 국제정치의 역학적 산물이었다는 점이다. 국경일이 되어도 국기게양 비율이 5%를 넘지 못하는 현실은 우리 국민들의 ‘애국심’ 의 현 주소를 가장 잘 보여주는 바로메타다. 자기가 땀흘려 벌지않은 돈을 헤푸게 쓰는것과 마찬가지 현상이다. 애착이 없는것이다. 크게봐서 우리사회는 ‘조국’ 에 대한 개념이 희박한게 사실이다. 주어진 독립 이었기 때문이며 앞으로도 이 문제는 우리의 약점이 될것이다. 각종 선거에서 투표율의 저조는 ‘참여’ 의 빈곤을 보여주고 있으며 ‘법’ 을 어기는 무질서는 내나라, 내가속한 사회를 사랑하지 않는증거다. 소중하게 생각 한다면 그럴수는 없다. 자기가 살고있는 일상의 ‘틀’ 이 국가이며 사회공동체인데 우리는 그 ‘틀’ 에 대해 분명한 소속감이 부족하며 자기몫에 대한 시대적 사명감이 없다.
한국 근대사에서, 광복후의 한 시기는 ‘건국’ 이 가장 중요한 시대적 사명이었다. 광복후 3년동안의 미군군정과 우리의 정치적 혼란기는 신생국가의 탄생을 위한 진통, 그 자체였다. 이승만과 김구의 ‘나라사랑’ 은 거의 절대적인 것이었지만 그 방법은 서로 달랐다. 김구가 우물안에 있었다면 이승만은 하버드와 프린스턴에서 공부했으며 국제무대를 뛰어다니며 독립운동을 했다. 김구가 반쪽만의 건국을 반대한 충정은 그 의도에서는 지금도 찬양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이승만은 미국과 소련이 축이된 냉전시대의 서막을 읽었으며 자칫 소련블럭으로 편입될 수도 있다는 상황을 알아차렸다. 우리가 지금 이만큼 사는것은, 전적으로 ‘체제’ 의 덕분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시장경제를 채택한 이승만의 정치적 혜안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없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사회주의를 선택한 김일성의 봉건왕조가 절대식량의 부족으로 국민 3분의 1이 굶주리고 있는것을 보면 이 차이의 근본을 알고있을 것이다. 우리의 ‘건국’ 은 성공적 이었고 그 바탕에서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것이다.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제철로 상징되는 ‘박정희의 시대’ 는 대를 미어 물려받은 ‘가난’ 을 끊자는것이 시대정신 이었다. 인간 박정희의 평가는 역사의 몫이다. 그러나 박정희가 이룩한 업적은 단군이래의 혁명적인 것이다. 박정희는 권력을 잡은후 나라의 ‘금고’ 가 텅 비어있는것을 발견했다. ‘둑에 올라선 자만이 강물의 수위를 알수있다.’ 그가 긴박한 상황을 요약해 설명한 말이다. 경부고속도로 계획을 발표했을때 가장 앞장서서, 집요하게 이를 반대한 사람이 김대중이다. 물류가 흐르고, 철이 생산되면서 한국은 ‘산업국가’ 가 될수 있었고 박정희가 심혈을 기울인 ‘수출진흥확대회의’ 가 있어 가난은 그 대물림을 끊었다. 내가 40대 초반이었을때, 일본인 직원들이 읽기위해 회사로 배달되는 요미우리, 마이니찌, 산께이 신문에는 가전제품, 자동차의 광고가 가득했다. 그때 그것은 모두 ‘꿈속의 물건들’ 이었다. 그때의 부러움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지금 우리들은 그 모든 것을 넘쳐나게 가지고 있다. 세계의 부자클럽인 OECD 의 정회원 국가가 된 것이다.
건국의 시대와 경제의 시대가 지난 지금, 이 시대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시대정신’ 은 어떤 것일까. ‘시대정신-시대적 요구’ 가 있다는것을 아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이 자각이 없다면, 약하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기가 어려워 진다. 시대정신은 ‘국가의 엔진’ 이기 때문이다. 시대정신은 목표를 세우고, 과정을 밟으면서 결과를 예측하는 능력이다. GNP 2만불에서 10년이 넘도록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것은 사실 심각한 문제다. 그 원인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된다. 함께 찾고, 함께 인식하고, 함께 노력하는 ‘합의’ 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는 ‘바뀌는 정권’ 의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는 국민일반의 ‘살아있는 정신’ 이 문제다. 매일 매일을 바쁘게 살면서도 삶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건 ‘동물적인 삶‘ 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성장동력’ 이 멈췄다고 한다. 그 성장동력이 무엇인가. 사람들의 ‘정신’ 이다. 건국도 경제성장도 ‘정신’ 이 이룩해낸 일이다. 그래서 정신이 중요한 것이다.
나는 철이들어 광복을 겪었고, 38선을 넘어 남쪽으로 내려왔으며, 6.25의 무서운 전쟁과 4.19와 5.16과 같은 정변도 몸으로 겪으며 지켜봤다. 어제를 기억하고 아는 안목으로 오늘의 우리사회를 진단한다면 그건 ‘혼란’ 이다. 지금의 사회적혼란은 옛날의 혼란들과는 전혀 질적으로 다른것이다.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안정적인 나라들을 여행하고 귀국하면 그 차이를 쉽게 알수있다. 지금 우리사회의 혼란은 ‘방종’ 과 ‘망종’ 에 가깝다. 혼란에도 수준과 내용이 있는법인데 지금의 혼란은 그게없다. 경박하고, 천박하며, 노골적이고 원시적이다. 온갖 ‘주장’ 들은 이념적 깊이가 없고, 상대를 석득할수 있는 신념도 부족하다. 철새처럼 둥지를 옮기며 자기이익만을 챙기는 부류들이 나라의 중심에 서서 큰 소리 치고있는게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지금 우리사회의 혼란은 ‘내전’ 수준이다. 내전이 무서운것은 나라가 안으로부터 허물어 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실로 막기어려운 재난이기도 하다.
지금 이 시대는 무엇을 우리들에게 요구하고 있을까. 우리는 그것을 알아 차려야 한다. 그리고 그 주어진 사명에 충실해야 한다. 그게 모두가 사는길이고 발전하는 길이기도 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체제로서의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지키는 일이다. 이 ‘틀’ 은 손상받으면 안된다. 사회주의의 붕괴로 지금 우리의 ‘틀’ 이 상대적으로 우수 하다는것은 입증됐다. 최선이 아니라해도 마찬가지다. 정권은 반대할수 있고, 바꿀수도 있지만 ‘체제’ 는 반대할수 있는게 아니다. 때문에 우리중에 있는 ‘반체제세력’ 에 대해 훨씬 더 단호해야 한다. 건전한 대안세력 으로서의 ‘좌파’ 는 필수적 이지만 ‘체제’ 를 위협하는 ‘사이비좌파’ 는 척결해야 한다. 패배주의, 열등감, 주변부에서 서성거리는 무능력한 낙오자의 부류들일수록 그 수법은 악랄한 법이다. 북한 이라는 지랫대를 이기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이 사악한 부류들에 대해서는 단연코 단호해야 한다. 그것이 이 시대가 요구하는 우리들의 ‘시대정신’ 인 것이다.
정치적 안정없이 경제적 안정없고, 경제적 안정없이 풍요로운 삶은 기대할수 없다. 세계가 모두 그렇다. 모든 선진국의 일차적 공통점은 정치적 안정이다. 정치일번지는 변함없이 ‘국회’ 다. 우리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사장 ‘폭력적인 국회’ 를 가지고 있다. 의사당 안과 밖에서 벌어지는 온갖 추태는 영화보다 더 사실적이고 충격적이다. 의회민주주의, 이 대의제-代議制 가 발달하지 않고는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은 될수없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유권자들’ 이다. 유권자의 수준이 지금의 국회를 만든것이다. 경남사천 선거구와 강기갑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연, 학연, 혈연을 끊지못하면 국회는 개선될수 없다. 그들 스스로는 전혀 바뀌지 못한다. 구조가 그겋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당론과 공천이 그런것들이다. 대의정치의 개선과 발전, 이것이야 말로 이 시대가 우리에게 그 역할을 주문하고있는 ‘시대적 사명’ 인 것이다.
사람들이 띠엄 띠엄 떨어져서 살때에는 ‘규칙’ 이 필요없었다. 상대적으로 ‘간섭’ 받을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법’ 이 생긴것은 모여살면서 비롯됐다. 조밀하게 모여 산다는것은, 의도한것은 아니라 해도 서로가 간섭받게되고, 충돌하고, 싸우게 된다. 자발적인 ‘배려’ 만 으로는 해결할수 없는 수준이 되는것이다. 그래서 법은 ‘강제된 배려’ 다. 그런데, 이 법은 모두가 잘 지킬때 법정신이 살아나 모두를 지켜주고 편케 하는것 이지만 일부만 지키고 일부는 지키지 않는다면 지키는 사람만 불이익-손해를 당하는 속성이 있다. 법질서 라는 말이 그 뜻이며 법질서를 세우자는 구호가 그것이다. 국가의 법을 집행하는 최일선의 조직이 국립경찰이다. 그래서 공권력 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공권력이 일부 세력에 의해 공격받는다면 그 나라는 위험수위에 가 있다고 할수있다. 법이 없다는것, 무법천지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체제를 지키고, 대의제도-국회를 개혁하고, 법 질서를 세우는것이 지금의 시대적 요구이며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이 일을 이루어 내는것도, 실패하는것도 우리 역량-力量 의 문제다. 2만불에 주저앉아 영원한 중진국이 되는것도, 싱가폴이나 일본의 수준으로 가는것도 모두 우리의 하기나름이다. 한가지 확실한것은, 세계 2차대전 이후, 민주화와 산업화를 함께 이룩한 나라가 우리밖에 없다는 점이다. ‘우수한 민족’ 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부분적으로 이미 일본을 능가하고 있다. 북미와 유럽의 넓은 시장에서 1등을 달리고 있는 제품도 여럿이다. 무슨 얘긴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마음만 먹으면 해 내는게 우리들이다. 먼저 시대의 요구를 잘 읽어보자. 그래서 우리의 사명을 알아차리자. 건국과 산업화에 성공했다면 그 다음으로 가는것도 안될 이유가 없다. |
우리부부는. 휴일이면 가끔 서울 인사동에 나간다. 차가없는 인사동 거리를 천천히 걸으면서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여러개의 갤러리에 들려 느긋하게 그림들을 감상한다. 우리의 일상에서 그림을 보는 즐거움은 빼놓을수 없는 중요한 요소다. 아내가 화가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도 그림을 무척 좋아하기 때문에 해외여행 중에도 미술관을 찾는일은 빼놓지 않는다. 그게 누구네 집이건 하얗게 비어있는 벽을 보면 섭섭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벽에 걸리는 한점의 그림이 집안의 분위기를 어떻게 바꾸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꽃시장이 조금씩 커지는것을 보면 머지않아 그림시장도 커질것같다. 꽃도 그림도 ‘여유’ 가 있어야 생활속에 들어오는 문화이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도 우리네 일상속에서 그림은 제 자리를 잡지못하고 있는게 사실이다. 우선 그림에 대한 인식이 크게 부족하다.
마침 그날은 제28회 국전중 구상부문이 서울시립미술관 경희궁분원에서 시작되는 날이라 인사동에서 점심식사를 한후 시립미술관으로 갔다.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인사동의 갤러리와는 전혀다른 팽팽한 분위기를 느낄수 있었다. 그림들의 수준이 달랐고 그 강열한 메시지는 감상하는 사람을 압도하고도 남았다. 서양화 몇점과 한국화 한두점은 탄성이 나올만큼 완성도가 높은 작품들 이었다. 인사동 갤러리의 그림들이 느긋하게, 일상을 살면서 그린 그림들 이라면, 국전의 그림들, 특히 완성도가 높은 그림들은 그 그림을 그린 화가가 ‘전력투구’ 한 흔적이 묻어나는 강열한 그림들 이었다. 죽기아니면 살기로 한 우물을 판 흔적이 뚜렷하게 보이는 그림들 이었다. 그래서 호소력이 컸고, 그 메시지의 울림이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어 내고있었다.
아내의 아뜰리에에는 많은 애들이 온다. 일부러 조사하거나 물어보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 아이들의 행동반경을 알게된다. 예를들어, 어떤 아이는 첼로, 바이얼린, 풀륫을 함께 배운다고 한다. 여기에 공부 때문에 세곳의 학원까지 다니고 있으니 사실 잠잘시간도 부족할것이다. 악기(樂器)는, 그것을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참으로 오랜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중,고등학교 6년동안 브라스밴드에 있었기 때문에 일찍 악기를 배우기 시작 했고 평생 아내의 선물인 목관클라리넷을 가지고 있다. 최근, 폐활량이 전같지 않아 70의 나이에 악기를 첼로로 바꿨다. 시작한지 3년이지난 지금, 겨우 첼로의 소리를 내는 수준이다. 말하자면 제소리를 내는데 3년이 걸린셈이다. 내 생각엔, 제대로된 연주를 위해서는 10년은 노력해야 될것같다. 악기는 그렇게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한 아이가 세가지 악기를 배운다는것은 무슨 뜻인가. 그렇게 여러 가지 악기를 배우는 애들은 뜻밖에 많았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세가지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채 끝나게 된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얘기다. 따라서 그 비싼 ‘레슨비’ 는 개물에 타먹는, 낭비되는 돈일 뿐이다. 악기 하나를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긴시간 혼신의 힘을 다 해야 하며 그래도 될까 말까다. 악기는 그렇게 어렵다. 하루만 연습을 안해도 당장 표가 나는게 악기다. 특히 관악기에 비해 현악기가 까다롭고 다루기 어렵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 악기를 좋아해야 된다. 소질이 없거나 싫으면 할수없는게 악기연습이다. 그러나 악기를 좋아하면 연습자체가 즐겁고 그만큼 발전도 빠르다.
그렇다면 왜 엄마들은 자기 아이에게 세가지나 되는 악기를 가르치고 있을까. 이건 정말 심각한 질문이기도 하다. 악기뿐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과외와도 연계되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 대답은, ‘경쟁심’ 이라고 할수있다. 누군가가 악기 하나를 하다가 두가지, 세가지로 나가자 너도나도 질세라 소질을 따질것도 없이 제 자식도 세가지 악기를 하도록 강요하게 되는것이다. 경쟁심은 질투에 뿌리박고 있기 때문에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아이에게 소질이 있든 없든,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그런건 문제가 안된다. 다른애가 세가지 악기를 하니 너도 해야된다는 단순논리다. 강도가 따로 있는게 아니다.
두 번째는 ‘불안심리’ 때문이다. 내 애만 뒤처지는건 아닌가. 불안은 현실을 왜곡하게 되고 과대망상증을 불러온다. 세가지 라는 숫자의 포로가 되어 내 아이도 세가지를 해야 해소되는 나쁜정서다. 제 자식이 경쟁에서 뒤지는것을 참을수 있는 엄마는 없다. 문제는 무엇에서 뒤지고 있는가 하는것을 살펴야 되는데 불안심리는 그것을 판단하고 볼수있는 눈을 가린다. 그래서 맹목적이 된다.
세 번째는 ‘탐욕’ 이다. 한가지도 어려운데 그것으론 성이 차지않는다. 적어도 세가지는 해야 체면이 서는것이다. 아이들의 과열, 과외경쟁은 사실 그 속내를 보면 엄마들의 경쟁이다. 불쌍한 애들은 대리전쟁을 하고있을 뿐이다. 그래서 애들이 더 측은하고 불쌍하다. 애들에게 무슨 죄가 있는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어린시절’ 을 뺐기고 있을뿐이다.
마지막이 ‘무지-無知’ 다. 악기는 아무리 뛰어난 애라해도 세가지를 할수없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용(蠻勇)을 부리게 된다. 만용은, 사리를 분별할줄 모르고 함부로 날뛰는 잘못된 용기를 이르는 말이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듯 애들만 고달픈 것이다.
세가지 악기에 별도로 세가지 과외를 받고있다면, 한 아이가 여섯가지를 괴외로 배운다는 얘기다. 우리 모두가 아는대로, 대개의 경우 사람은 한가지나, 뛰어나도 두가지 정도만 잘 할수있다. 절대로 여섯가지 모두를 잘 할 수는 없다. 더 중요한 문제는, 여섯가지가 나누어 가지는 시간들이 정말 잘하는 한가지일에 집중해야 하는 천금같은 시간들을 뺐어간다는 점이다. 그래서 여섯가지는, 그 어는 하나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채 끝나게 된다. 평생 과외를 받고 사는건 아니지 않는가. 한 아이의 천부-하늘이 주신 재능이 죽는것은 물론, 그 여섯가지에 오래동안 쏟아부은 돈과 정성, 부모의 노력이 허사가 되고만다. 이건 상상이 아니라 불을보듯 현실적인 문제다. 어떻게 한 인간이 여섯가지를 모두 잘 할수 있는가.
인사동 갤러리에 결려있는 그림들과 국전 전시장의 입선이상 작품들은, 결코 좁혀질수 없는 ‘갭’ 을 가지고 있다. 전혀 그 차원이 다른 그림들인 것이다. 어떤 화가는 입선한 그림하나에 일년동안 매 달렸었다고 얘기했다. 오직 한 우물만 판 것이다. 그래도 낙선된 작품들이 더 많은게 현실이다. 전력투구하는 사람들도 탈락하는 세상에서 여섯가지를 배우겠다고 뛰어다니는 애들이 설 자리는 아예 없다고 보는게 옳다. 그렇게 해서는 결코 성공할 수가 없다. 한 우물을 깊게 파 내려가는 사람 옆에서 여섯 개의 우물을 파느라 이리뛰고 저리뛰는 사람이 어떻게 경쟁력을 가질수 있겠는가. 죽도 밥도 다 안되는 것이다. 무지하고 어리석은, 탐욕적인 엄마들은 큰돈 써 가면서 애들을 망치고 있는것이다.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수 없기 때문에 더 비극적이다.
자녀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사회에는 또 하나의 구조적인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매년, 2년제 전문대와 4년제 대학에서 50여만명의 졸업생이 쏟아져 나온다. 우리의 경제, 산업규모는 그중 채 절반도 흡수하지 못하고 있고 조만간 개선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장치산업의 자동화와 공장의 해외이전, 강성노조로 인한 외국인 투자의 감소로 일자리는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솔지히 말해, 속칭 일류대를 못 나오면 그대로 백수(白手)다. 직장이 없으니 독립도 못하고 결혼해서 가정도 꾸리지 못한다. 평균 4억원을 투자해 기른 자식이 오갈데 없어 부모의 짐이되어 얹혀살게 된다. 부모에게도, 자식에게도 못할일이 그것이다. 본인인들 얼마나 괴롭겠는가. 그렇다고 당장 뾰죽한 수가 있는것도 아니다. 그래서 절망적이다.
이제는 애들이 아니라 그 부모가 생각을 바꿀때가 됐다. 현실이 그걸 요구하고 있음을 알아차려야 한다. 일류대학에 들어갈 실력이 안된다면 다른길을 찾는게 지혜로운 일이다. 84%의, 세계최고의 진학율 자체가 큰 함정이다. 애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 을 빨리발견하고 그길로 나가게 해야한다. 그게 분명하게 성공하는 길이다. 이를 위해서는 학부모의 ‘가치관’ 이 바뀌어야 한다. 사교육을 극복하는 최대의 변수가 그것이며 ‘학벌’ 이 아니라 ‘실력-실리’ 를 취하는 지혜로운 선택이 바로 그것이다. 자기자식이 소중하지않은 부모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런데 그 부모의 잘못된 가치관과 선택 때문에 사랑하는 자녀들이 평생 제길을 잃고 방황하게 된다면 이보다 더 큰 비극이 달리 또 있겠는가. 이제는 ‘출세를 향한 천민교육’ 을 버려야 한다. 애들이 자기가 잘 하고 좋아하는 길로 갈수있도록 풀어주고, 도와주고, 밀어줘야 한다. 그게 진정 자식을 사랑하는 길이다. |
에게(Aege) 해(海)는, 지중해의 북동부, 그리스 동부와 터키서부 사이에 있는 해역으로서 남북이 약 650킬로, 동서가 약 300킬로이며 가장 깊은곳이 3294미터에 이른다. 이 해역에는 크고작은 섬이 많아 일명 다도해라고도 불린다. 일찍부터 에게문명이 발당했으며 터키령의 연안(소아시아) 에는 식민지가 많고 섬과 연안에는 유적지도 많기 때문에 관광지 로서도 잘 알려져 있다. 나는 각기 다른크기의 배를 타고 에게해를 여러번 항해한 일이있다. 에게해의 가장 인상적인 특징은 그 특유의 바닷물 색깔이다. 정말 불루불랙잉크색 그대로다. 에게해는 그렇게 검푸른 바다다.
한번은, 터키선적의 50톤급 여객선으로 ‘쿠사다시’ 를 떠나 에게해를 항해하게 됐는데 날씨는 청명했지만 한 바다에 나가니 너울파도가 일고있었다. 거개의 사람들은 높은파도에 멀미가 나는줄 알지만 제일 무서운건 너울파도다. 파도의 폭이 넓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지만 너울파도에 견디는 장사는 없다. 결국 50여명의 승객은 물론, 나중에는 선원들과 선장까지도 멀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멀쩡한건 나 하나뿐이었다. 배가 목적지에 도착 할때까지 나는 멀미를 하지 않았다. 터키인 선장이 내게 물었다. ‘당신은 어느나라 사람인가.’ 나는 대답을 짧게했다. ‘나는 터키가 사랑하는 한국인이고, 우리나라는 반도로서 삼면이 바다다.’ 터키인 선장은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리고 엄지를 세워보이면서 나를 ‘스트롱 맨 ’ 이라고 했다.
나는 거의평생 바다낚시를 했다. 꼭 두 번, 죽을고비가 있었는데, 한번은 남해에서 배낚시를 하던중 작은배의 낡아빠진 육상엔진(법으로는 배에 장착하지 못하게 돼있다.)이 고장나서 서 버린것이다. 우리일행 4명과 선장까지 5명이 탄 이 작은배는 조류에 밀려 떠 내려가기 시작 했고 급기야 날이 어두워져 동서남북을 알수없는 상황이 됐다. 내가 선장에게 물어봤다. ‘이대로 흘러가면 어디로 가는것인가.’ ‘대마도쪽으로 갑니다.’ ‘만약 대마도 해역에 닿지못하면 그대로 태평양으로 가는게 아닌가.’ 선장은 묵묵부답이었다. 미상불 일은 커졌고, 달리 손쓸 방법도 없었다. 바다귀신이 되는 차례만 남은것이다. 그때, 멀리서 불빛이 보였고, 그게 점점 우리쪽으로 다가왔다. 작은어촌, 저녁이면 돌아오지않은 배를 곧 알 수 있고, 그래서 그들이 수색에 나선것이다. 그런일이 자주 있었다는 얘기다. 수색나온 배에 예인되어 어촌으로 돌아가는중 달빛에 번쩍이는 물체가 계속 배 옆을 따라왔다. 갈치였다. 어촌에 도착할때까지 나는 채낚기로 굵은 갈치 수십마리를 잡았다. 낚시꾼이 그렇다.
또한번은 서해의 덕적도 앞 바다에서, 작은 목선의 낡아빠진 엔진이 서 버렸고 배는 파도에 밀려 무인도의 바위로된 절벽쪽으로 가고 있었다. 부딪치면 낡은목선은 산산조각이 나는것이고 그 다음일은 얘기할것도 없다. 겨울바다의 칠흙같은 밤에 배는 절벽으로 다가가고 선장은 죽을힘을 다해 엔진을 살려보려고 했지만 되지 않았다. 우리일행 5명은 손에 들수있는 막대는 전부동원해 배와 절벽사이의 간격을 유지 하기위해 사력을 다해 절벽을 밀어내고 있었다. 그때 개업의(開業醫)이신 최원장께서 선장에게 말했다. ‘혹시 엔진에 에어가 차 있을수 있으니 먼저 에어를 빼고 다시 시동을 걸어보라.’ 정말 그대로 였다. 엔진이 살아났고, 우리도 살아난 것이다. 그렇게 끔찍한 일을 당하고도 그 낡아빠진 목선(어선)을 그후 10년동안 탔으니 알다모를일이 그것이다. 단, 선장이 바다밑 여(바위)를 잘 아는게 제일큰 이유였을 것이다. 그만큼 고기를 많이 잡을수 있는것이다. 또하나 알다 모를일은 어려서부터 배를 타고 바다를 누빈 선장이 뭍에 올라와 자동차만 타면 멀미를 한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아주 심하게.
오랜시간 여러곳에서 여러 가지 배를 타다보니 배의 속성을 알게됐고, 바다와 배, 배와 사람의 관계에 대해 나름대로의 이해를 가질수 있었다. 그리고 배를 사랑하게 된것도 사실이다. 배는, 그것이 수십만톤의 거대한 철선이라 해도 모든 나라에서 여성(女性)으로 분류 된다. 그 거친 바다를 헤쳐가는 용감무쌍한 배가 여성으로 분류되는것은, 우선, 그 몸체가 유연한 곡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모든 배들은 곡선에 따라 성능이 크게 차이가 난다고 한다. 다음은, 여자가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화장을 하듯, 배도 페인팅이라는 화장을 한다. 여자도, 배도 나이가 들면 더 짙은 화장을 하게된다. 그리고 배는, 좀처럼 하반신을 들어내지 않는다. 배가 하반신을 들어내는것은 사고나 수리할 때 뿐이다. 배와 여자는 똑같이 유지비가 많이든다.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쓸어주고, 닦아주고, 기름치고, 조이고, 덧칠을 해야하는 존재다. 지금은 작은 변화들이 있긴하지만, 배는 전통적으로 남자만 타는게 사실이다. 그러니 배는 여자인 것이다. 이런 얘기들은 정설도 아니고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것도 아니지만 오래동안 배를 타다보면 알게되는 속설임도 사실이다. 나중에, 선장은 배가 움직이는동안 급한 볼일이 있으면 내게 키를 맡기곤했다. 배를 오래타다보니 반은 뱃사람이 됐다는 얘기다.
배가 가지는 기능중 가장 중요한것은 무엇일까. 브릿지에서 통신실을 거쳐 갑판까지, 그리고 바닥의 기관실까지 중요하지 않은 기능은 없다. 그러나 그것들보다 더 중요한, 가장 기초적인 기능은 ‘복원력-復元力“이다. 다른 어떤힘에 의해 기울어졌던 배가 그대로 침몰하지 않고 일어서는 것은 전적으로 이 복원력 때문이다. 복원력을 잃으면 다른기능들은 아무 쓸모도 없다. 그렇게 배의 복원력은 중요하다. 생사가 걸린 기능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면 배의 복원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건, 무게중심에서 나온다. 무게중심이 부력을 받아야 기울어졌던 배가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동안 있었던 연안여객선들의 각종 사고는 과적도 문제였지만 그보다는 온갖 하중이 갑판에만 쌓이고 배 바닥에 무게중심이 없었기 때문에 복원력이 없어 뒤집힌 것이다. 대양을 항해하는 소형요트의 경우. 요트중심의 keel 을 뚫어 center-board를 길게 물속으로 늘어뜨리기 때문에 비록 작은 요트지만 그 확실한 무게중심 때문에 뒤집히지 않는것이다. 때문에 무게중심은 배에 있어서는 가장 우선되는 조건인 셈이다. 바닥에 깔리는 무게중심없이는 복원력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겉으로 봐서 아무리 화려하고 큰 배라해도 그 무게중심이 바닥이 아니라 갑판에 몰려있을때 작은파도에도 뒤집히는게 그런 이치다.
조금은 다른 얘기이긴 하지만, 모든 지상의 구축물은 그 보이는 부분을 떠 받치고 있는, 보이지 않는부분의 기초 때문에 서 있는것이다. 기초가 부실하면 그 위에지은 구조물은 금이가고, 기울고, 종당에는 무너진다. 배의 무게중심도, 구조물의 기초도, 보이지 않는곳에 있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나의 국가, 사회공동체를 배로 비유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적절한 것이기도 하다. ‘한국호’ 가 그것이다. 지금 한국호는 누가봐도 호화스러운 선박이다. 잘차려입고, 좋은것 먹고, 좋은집에서 살고있다. 청바지 하나에 500만원짜리가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모두가 자기를 드러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있으며, 그래서 하나같이 갑판에만 모여있다. 심지어 민주한국호의 엔진이라고 할수있는 국회까지도 배밑을 떠나 갑판에 올라와 온갖 추태를 연출하고 있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 배의 바닥에는 내려가지 않으려 한다. 사실 그건 인지상정이기도 하다. 누가 어둡고 냄새나는 배 바닥에 있으려고 하겠는가. 배가 뒤집혀 모두가 죽는다 해도 거기에 내려갈 자원자는 없다.
그렇다면 누가 이 기피하는 일을 자원해서 할것인가. 그게 종교다. 종교에게 주어진 사명이 바로 ‘무게중심’ 이다. 그 종교가 지금 역세속화되어 갑판으로 올라갔으며 세상을 따라 물량화되고있다. 그것이 변질이며 타락이다. 배가 그 생명선인 복원력을 얻기 위해서는 ‘무게중심’ 이 있어야 한다. 모두가 기피하는 그 무게중심을 자청해서 감당하는게 종교요, 기독교다. 교회는 그래서 바닥에 있어야 한다. 그게 정 위치다. 하나의 국가, 사회공동체를 떠 받치고 있는 기초가 돼야 하는것이다. 일찍이 바울사도는 그 중요성을 깨달은 사람이다. 그가 고린도 교인들에게 써 보낸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우리는 보이는것에 눈길을 돌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것에 눈길을 돌립니다. 보이는것은 잠시뿐 이지만 보이지 않는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고후4:18 공동.) 기독교는 잠시 보이다 없어지는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영원한것을 추구하는게 그 본령이다.
이미 이렇게 중요한 말씀이 주어졌는데도 왜 지금의 교회는 갑판에 자리잡고 온갖 보이는것들을 탐욕적으로 추구하고 있는가. 타락했기 때문이다. 변질됐기 때문이다. 기복-祈福 이 그것이다. 보이는것을 추구하는한, 교회는 바닥으로 내려갈수가 없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는 무관한 인간집단이 될 뿐이다. 거기에 구원은 없다. 가장낮은 자리, 더 내려갈수 없는 바닥. 그러나 복원력을 일으키는 그 자리가 바로 ‘십자가의 길’ 이다. 수많은 생명을 구하는 원리가 그것이다. 오뚜기는 쓰러지지도 않고, 쓰러뜨릴수도 없다. 그 무게중심이 항상, 분명하게 바닥에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호의 바닥은 비어있다. 작은 파도에도 뒤집힐수 있는 취약점을 안고있는 것이다. 그 바닥의 무게중심은 끝까지 보이지 않는것을 추구하는 교회의 몫이다. 그게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기독교다. 그래서, 영광의 부활이 있기전에 고통의 십자가가 있었음을 잊으면 안된다. |
인간은 동물적인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지만, ‘정신적인 존재’ 다. 그리고 영적(靈的) 존재이기도 하다. 인간의 숭고한 정신이 철학의 문을 열었다면 인간의 영은 종교의 문을 열었다. 철학의 밭을 통과한 신앙은 건전하지만 그렇지 못한 믿음이 미신이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위대한 인간의 정신에 우,열이 있다는 것은 사실 신비에 속하는 문제다. 그것은 선과 악을 설명할수 없는것과 같은 차원의 숙제이기도 하다. 어떤 정신은 인류에게 봉사했지만, 다른정신은 인간을 파멸의 길로 이끌었다. 인간정신의 우,열은 아마도 처음부터 갈라져 있었을 것이다. 어떤면에선, 그건 태생적일수 있기 때문이다. 성격이 변하지 않는것을 보면 이해할수 있다. 그래서 문학에서는 ‘나쁜피’ 라는 매우 유비적인 표현을 쓴다. ‘병든정신’ 을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사람이 살고있는 모든시대에는 그 시대에서 나타나는 ‘시대정신’ 이 있어왔다. 그 시대정신 안에는 사유체계(思惟體系)는 물론, 가치관도 포함돼 있으며 그 시대정신이 사람들의 행동양식(行動樣式)을 결정짓는것도 사실이다. 전통적인 사회에서는 이미있는 학습과정의 ‘틀’ 을 통해 그것이 교육되고, 퍼지기 때문에 보수적인 측면이 보전되는게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정보화 시대에는 인터넷 이라는 보편화된 수단을 통해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검색된 정보를 정제하고, 구분하고, 판별하는데는 그렇게 할수있는 ‘실력’ 이 그 바탕에 있어야 한다. 그게 있으면 정보의 주인이되고, 그게 없으면 정보의 노예가 될수밖에 없다. 정보화시대의 위험과 파탄이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이미 우리는 그것들을 아프게 체험한바 있으며 지금도 똑같은 위험앞에 노출돼 있기는 마찬가지다.
최근, 한 네티즌이 대학교 커뮤니티에 올린글이 ‘43계명’ 이란 명칭으로 불리면서 인터넷포털의 게시판, 카페, 블로그등을 통해 빠른속도로 넓게 퍼지고 있다. 그 네티즌이 커뮤니티에 올릴때의 글 제목은 ‘사회에 나가면 누구나 알게되는 사실43가지’ 였다. 43개의 짧고도 자극적인 글들은 대단히 냉소적이고 자조적(自嘲的)이며, 어떤 글들은 허무주의-nihilism 에 가깝다. 세상을 부정적으로 바라 보는데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것이다. 이제 43개의 글중 그 내용이 상대적으로 더 첨예한 10개를 선정, 부연설명 해 봄으로서 ‘병든정신’ 이 사회공동체에 끼치는 나쁜영향에 대해 생각해 봐야한다. 나쁜정신도 시대정신임에는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
1. 나까지 나설 필요는 없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겠다’ 는 얘기다. 함께 구정물에 손을 담글 의사가 없는, 가장 소극적인 이기주의가 그것이다. 인간의 사회공동체는 개개인의 자발적인 ‘참여’ 에 의한 ‘관계’에서 시작되는 조직이기 때문에 한 발 물러서 있겠다는 태도는 지극히 반사회적인 발상일수 밖에 없다. ‘너희끼리 잘 해봐’ 아웃사이더 만이 내 뱉을수 있는 말이다. 이런부류가 많아지면 그 사회공동체가 붕괴되는건 시간문제일 뿐이다. 특히 젊은이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2. 헌신하면 헌신짝 된다.
헌신짝은 소용에 닿지않는 버려진 물건이다. 헌신(獻身) 이라는 이타적 행동이 결과적으로 ‘쓰레기’ 가 된다는 이 발상은 지극히 반 인간적이다. 인류문화사에서 인간집단을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향상시킨것은 살아있는 정신들의 그 고귀한 헌신과 자기희생, 그리고 봉사였다. 가장 고상한 인간의 이타적 행동에 대한 이런 냉소는 그 정신이 깊이 병 들었다는 증거다. 가장 근접한 사례가 있다면 부부사이까지 희생하면서 자녀교육에 매달리는 부모들이 자식이 성장한후 용도폐기되는 경우가 그것이다. 효용가치가 없어지면 버려져 헌신짝이 되는것이다.
3. 포기하면 편하다.
패배주의의 전형이다. 모험과 도전이 없는 삶은 그 겉모습이 어떠하든 젊은이의 길은 아니다. ‘야심’ 은 성공의 가장 큰 열쇠다. 야심이 있어야 목표가 생기고 그 목표를 향해 어려운 과정들을 극복해 나갈수 있다. 지금의 젊은세대가 어려움에 약한것은 무지한 부모들의 과보호가 온실이 되어 비바람을 견디는 인내력을 길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면역력이 없는것이다. 그래서 빨리 포기한다.
4. 가는말이 고우면 사람을 얕본다.
대단히 체험적인 말같다. 큰목소리가 통하는, 왜곡된 세상을 살아본 사람의 경험이 그것이다. 인사-人事 는 말에서 시작된다. 지금 우리사회는 만인이 만인을 향해 쟁투하는 살벌한 사회다. 자칫 공손한 언사가 약자로 비칠수도 있는 분위기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그게 잘못된 것임을 계속 천명하면서 고운말이 오가는 사회를 만드는것이 당연한 일이지 얕보이는게 싫어 목소리를 높인다면 결국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수있는 사회는 만들지 못한다. 고운말에 힘을 싣는것은 그래서 ‘자기의 신념’ 이다. 자기철학이 분명하다면 이미 표정에서 말 이상의 효과를 얻을수 있다.
5. 즐길수 없으면 피하라.
즐겁다는 개념은 괴롭다는 개념이 있기 때문에 성립되는 정서다. 사람사는 세상은 날씨와 같다. 맑고 따뜻한 날이 있는가 하면, 먹구름이 낄때도 있고, 비바람이 치는가 하면 추운날도 있다. 그런데 맑고 따뜻한 날에만 얼굴을 내밀고, 궂은 날씨에는 나서지 않는다면 어떻게 이험한 세상을 살아갈 것인가. 정신적존재인 인간은, 쾌락보다는 고통을 통해 더 크게 성장하는 ‘인격체’ 임을 알아야 한다.
6. 일찍 일어나는 새가 더 피곤하다.
일본과 우리는 ‘같은시간대’ 다. 그런데 일본은 우리보다 평균 한시간 먼저 해가뜬다. 같은 시간대에서 그들은 우리보다 한시간을 벌고 들어가는 것이다. 하루를 일찍 시작 하는것은 밤시간과는 무관한 ‘현실적인 이익’ 이 있다. 시간대가 같기 때문에 먼저 시작하는쪽이 유리한 것이다. 그래서 일본사람들이 우리들보다 더 피곤해야 하는것일까. 정말 말도 안되는 소리다.
7. 어려운 길은 길이 아니다.
포기하면 편하다는 생각의 연장이다. 세상에는 어려운 길이 따로있고, 쉬운길이 따로 있는게 아니다. 그 두가지 길은 섞여서 연결돼 있기 때문에 어느 한쪽을 피할 수가 없다. 따라서 어려운 길을 피하면 앞으로 나아갈수가 없다. 그 자리에 정체된다는 것은, 고여있는 물이 썪는것과 같은 과정을 밟게된다.
8. 내일 할수있는 일을 오늘 할 필요가 없다.
‘준비’ 가 필요없다는 괴변이다. 오늘일을 다 하고도 여력만 있다면 내일일을 끌어다 하는게 발전이요 성공이다. ‘주어진일’만 하는것은 노예일 뿐이다. 노예는 절대 내일일을 미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게 자유하는 사람이라면, 더구나 그게 자기일 이라면 모레일까지도 끌어다 해야한다. 정당하게 벌어 크게 재산을 불린 사람들은 하나같이 개미처럼 부지런히 일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처음부터, 그게 사과장사라 해도 열심히 자기일을 해 온 사람들이다.
9. 고생 끝에 골병난다.
고생의 의미는, 성공이 주는 보상이다. 골병날까봐 두려워서 ‘리스크’ 를 피한다면 평생을 살아도 성공할수 없다. 성공은 꼭 돈을 많이버는것 만은 아니다. 자기의 실현, 자기재능의 구현, 그것들이 사실은 더 값진 성공이다. 골병은 고생하는 방법과 자세가 나빠서 생긴것이지 고생자체가 골병을 부르는 것은 아니다.
10.티끌 모아봐야 티끌이다.
일확천금은 언제나 재앙을 불러온다. 복권인생을 두려워 해야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땀흘려 번 돈의 가치는 다른 어떤것과도 비교할수 없다. ‘저축’ 은 변함없는 경제의 미덕이다. 아무리 많은숫자도 그 시작은 ‘하나’ 부터다. 하나를 우습게 알면 돈은 쌓이지 않는다. 티끌 모아봐야 티끌이라는 이 잘못된 생각은 인간의 정신을 좀먹는 악마의 속삭임인 것이다.
동서고금을 통해 모든 사회공동체 안에는 부정적이고 냉소적인 부류들이 있어왔고, 앞으로도 있을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사회가 붕괴되지 않고 굴러가는것은 ‘건전한 정신’ 이 상대적으로 더 많기 때문이다. 건전한 정신의 참 기능은 부정적이고 냉소적인 反을 성찰의 계기로 삼아 合을 도출해 내는 능력이다. ‘헤겔’ 에 의해 정식화된 ‘正反合’ 의 변증법적 논리가 바로 그 개념이다. 문제는 合을 이끌어 내는 우리사회의 수준이 크게 미흡하다는 사실을 인정 해야한다. 지금의 모든 사회적 혼란의 원인도 바로 거기에 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더 피곤하다’ 가 아니라, ‘일찍 일어나는 새라야 벌레를 잡을수 있다’ 가 변함없는 정답이다. 그래서 긍정과 부정은 종이한장 차이인 것이다. |
2007년, 동국대학교는 파벌싸움등 부작용이 크게 노출된 총장의 교수직선제를 폐지 하고 대신 재단이사회가 오영교 현 총장을 영입했다. 새 총장의 지론(持論)은, ‘대학은 시장(사회)의 수요에 맞춰 고객(기업)의 요구대로 질 좋은 제품(졸업생)을 공급해야 한다‘ 는 것이다. 오총장은 2008년 2월 1049명 교수전원의 강의평가를 공개, 대학사회에 큰 충격을 던지기도 했다. 2009년7월현재, 동국대학교는 4년제 종합대학교로서는 처음으로 ‘학교의 일대개혁, 조정작업’ 을 진행중이다. 특히 ‘상시정원관리 시스템’은 학과의 통폐합은 물론, 교수들의 전공까지 바꾸는 혁신적인 내용으로서 앞으로 많은대학에 상당한 충격과 자극을 줄것이 틀림없다.
예들들어, 기계공학부가 기계로봇에너지 학부로 명칭을 바꾸는것은 물론, 교육커리큘럼의 60%를 바꾸는 작업을 하고있다. 이는 기계공학 전체라는 넓이보다는 특정부분에 집중, 전문성을 높여 경쟁력을 제고하겠다는 의도다. 뿐만 아니라, 식물생명공학부 교수 일부는 바이오환경과학부로, 다른일부는 기초생명과학부로 분리되기도 했다. 동국대의 전체 53개 학과와 전공중 16개 분야에서 이런식의 통합, 분리, 개편이 추진되고 있다. 대학측(재단)이 매년 각 학과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통해 하위15%학과의 정원은 줄이고 대신 우수학과의 정원을 늘려주는 시스템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정원을 빼앗긴 학과,교수들이 학생들의 선책을 받기위해 스스로 개혁, 개편에 나설 수밖에 없게된 것이다. 대학안에서 분야별 경쟁이 시작된 것으로 평가할수 있는 혁명적 변화가 아닐수 없다.
2009년 10월 현재, 이 좁은땅과 5천만이 채 안되는 인구에 4년제 대학만 206개다. 엄청난 역피라밋의 기현상이 아닐수 없다. 여기에 2년제 전문대학까지 합치면 400개가 넘는 고등교육기관이 있는셈이다. 년간 배출되는 졸업생이 50여만명, 일자리는 그 반밖에 수용할수 없는 경제, 산업규모다. 우리사회에서 백수가 누적되는 현상은 이러한 수요와 공급이 맞지않는 구조때문 이기에 이대로 가면 ‘일자리’ 는 해결될수 없는문제로 남는다. 이미 정부-교육부는 86개 대학을 통,폐합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그 성과는 아직까지 미미할 뿐이다. 지금과같은 대학숫자와 산업규모로는 ‘취업-일자리-실업’ 의 문제는 전혀 해결될수 없는, 맞물려있는 구조적 악순환만 되풀이 된다. 아직까지는 그 누구도 근본적인 문제의식과 안목으로 이일에 접근하지 못하고있다. 역대정부의 땜질이 그것이며 대입제도가 열다섯번 바뀐게 그 증거다.
한국뿐 아니라 지구촌자체의 변화속도는 이제 놀라운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대학들은 70,80년대에 만든 ‘학과들’ 이 같은 간판을 달고 20년, 30년된 골동품 노트로 강의하는 형편이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교육의 소비자인 학생-학부모-사회가 요구하는것을 가르치기 보다는 교육의 공급자인 학교-교수들이 오래전에 배웠던 학문을 그대로 가르치는 공급자 위주의 교육인것이다. 4년제 대학교 거의 모두가 비슷한 학과로 백화점같은 구색을 맞추어 가지고 있으며 교육의 질적 내용보다는 학교의 몸집불리기에 더 치중해온게 사실이다. 대학진학율은 84%로 세게최고지만, 교육품질과 수요자의 만족도 조사에서는 조사대상 60개국중 59위로 최하위권이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 IMD 2008년 통계) 공급은 넘쳐나지만 수요자가 골라쓸수 있는 고품질의 상품은 없다는 얘기다. 교육의 외화내빈(外華內貧) 인 것이다.
1896년 박승직 이라는 상인이 ‘박승직 상점’ 을 개점했으며, 지금 이 가게는 ‘두산’ 이라는 그룹이되어 전세계 33개국에 사업체를 가지고있으며 35,000여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전하고 있다. 2008년, 두산은 학교법인 ‘중앙대학교’ 를 인수했다. 재단이사장은 두산중공업회장인 박용성씨다. 기자와의 인터뷰중 그가 한 말의 중심적인 내용을 정리해보면, 중앙대의 19개 단과대학, 77개학과를 싹 잊어버리고 백지위에 완전히 새로그릴 계획이다. 내년 서울캠퍼스 신입생부터 여기에 맞춰뽑겠다. 이어서 그는, 국내대학 역사상 가장 큰 실험이 될것이라며, 그동안 대학들의 학과구조 조정은 음식점으로 치면 ‘신장개업식’ 이었다. 명칭만 근사하게 바꾸고 옛날것 그대로 가르쳐왔다. 우리는 완전폐업하고 새로 개업하는 방식으로 할것이다.
자동차 시대에 대학은 여전히 ‘마차’를 가르치고 있다. 대학들이 엄청난 등록금을 받으면서 졸업생이 사회에 나가 제밥벌이도 못하는 교육을 시키고 있는것이다. 그는, 대학에 와서 가장 어려웠던 일이 교수평가시스템을 만드는 일이었지만 ‘그것 못하면 학교못한다’ 고 설득, 지난 1년사이 최대 5000만원까지 차이나는 교수연봉제가 도입됐다. 이제는 교수들도, ‘내가 연구 안하고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면 이 대학에서 못견디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시작 했으며, 이는 도서관 새로 짓는것보다 더 큰 변화라고 했다. 그는 총장직선제에 대해서도 ‘그건 정말 법으로라도 못하게 해야한다. 환자가 병원장뽑고, 공무원이 장관 임명하는가. 직선제 없애고 잘하는 총장은 수십년동안 소신껏 하게해야 한다. 대학처럼 설득할 대상많고, 시간많이 걸리는데서 임기4년 으로는 아무것도 못한다.
2010학년도 수시모집원서가 마감된 가운데 중앙대학교는 서울지역 주요대학중 문과, 이과, 예체능계열의 학과별 최고경쟁율을 모두차지했다. 지난해보다 2만2천여명이 더 많은 6만3천여명의 지원자가 몰렸으며 올해 수시모집 정원 2533명은 34,4대 1의 기록을 세웠다. 대기업의 투자와 개혁에 대해 기대감이 컸다는 반증이다. 지금까지 대학재단들은 거개가 ‘학원모리배’로서 재단이 학교를 지원한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돈을 빼가는 기생적인 관계였다. 여기에 지방정치모리배가 가세, 이 좁은땅에 400개가 넘는 이름만의 대학을 만든 것도 사실이다. 생각하면 무모하고 비참한 일이 아닐수 없다. 지금의 우리대학들이 세계적 경쟁력이 없는것은 대학캠퍼스가 철밥통의 무풍지대 였기 때문이다. 이제 비로서 대학가에도 경쟁과 개혁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것은 크게 늦었지만 다행한 일이기도 하다.
지금 대학들의 속사정은 밖에서 보는것 보다 더 심각하다. 교육부가 예측한 자료를 보면 지금기준으로 대입정원을 60만으로 볼때, 2012년까지는 고교졸업자가 64만명을 유지하지만 2015년부터 줄기시작해 2021년에는 47만명이 된다. 출산율 감소가 나타내는 결과다. 2008학년도를 기준할 때, 입시에서 정원 30% 이상을 채우지못한 대학이 27개교다. 지난23일, 경북경산에 있는 4년제의 아시아대학이 법원경매에 부쳐졌다. 대학이 통째로 매물로 나온것이다. 감정가 110억원 이었지만 1차 경매에서 유찰, 77억5000만원으로 다시 경매에 부쳐질 계획이다. 앞으로 이런일은 계속 생길것이다. 이미 교육부는 경영이 어려운 22개 사립대에 대해 실사를 실시하고 있다. ‘변신하는 학교만’ 이 살아남는다는 사실은 그래서 엄연한 현실이다.
충남 당진에 있는 신성대학은, 2007년 ‘제철산업과’ 를 새로 만들었다. 인근에 있는 현대제철과 제휴를 맺고 만든 학과다. 정원80명의 이 학과는 취업과 함께 현장에서 전문기술과 기능을 사용할수 있도록 커리큘럼부터 현재제철이 직접 참여했다. 강의도 현대제철 직원이 직접하고 있으며 졸업생은 전원 현대제철에 취업한다. 충남 보령에는, ‘아주자동차대학교’ 가 있다. 본래는 기계공학과 컴퓨터공학등을 갖춘 전문대였다. 2005년 학교이름을 바꾸면서 학과도 자동차 디자인에서부터 부품개발, 장비운영, 자동차튜닝등을 연결, 자동차 생산라인처럼 바꿨다. 600미터의 자동차주행연습장엔 수백대의 차가 있으며 신입생 4-5명당 한 대의 실습용 자동차를 주고 직접 분해해보고 조립하게 한다. 전체교수 29명중 산업체 경력자가 26명, 미국의 GM출신을 비롯, 현대자동차연구실, 기아의 중앙기술연구소, 대우중공업, 삼성전자, 만도기계등의 전문가들이다. 이 학교의 2008년도 졸업생 취업률은 89%. 웬만한 수도권대학보다 높은 비율이다. 한가지 분야에 집중하는 교육시스템이 얼마나 효율적인가를 잘 보여주는 케이스다.
경남의 거창, 이 시골에서 2010년 3월에 ‘거창승강기대학’ 이 개교한다. 이 대학은 승강기전문학과로만 운영될 계획이다. 우리나라의 승강기 설치 증가율은 세계3위권 이지만 승강기제조, 유지보수, 검사 기관등에서 요구하는 맞춤형 전문가는 태부족이다. 이달초 마감한 수시모집결과 평균 4.6대 1. 학과에 따라서는 8.4대 1의 높은경쟁율을 보이고있다. 지원자중 상당수가 내신1.2등급이며 수도권지역 지원자가 25%였다. 2012년까지 이 지역에는 승강기부품과 완제품을 생산하는 60여개의 관련업체가 들어서며 ‘승강기빌리지’가 되는것도 호재였지만, ‘졸업후 취업이안되면 수업료를 100% 환불하겠다’ 는 약속이 어필한 때문 이기도 하다. 학교가 학생을 선발하는 방법과 교육의지, 그 전문성에서 전에는 전혀 볼수없었던 새로운 패러다임이 만들어지고 있는것이다.
지원자감소, 졸업생의 미취업누적(백수의 증가) 대학운영에서 받게되는 재정적 압박, 정부의 구조조정등 대한민국 대학들의 앞날은 암울하기만 하다. 시골의 초등학교 페교가 늘어나듯 대학들도 문을 닫아야 하는 사태는 이미 분명히 보이는 현실이다. 수요에 맞는 교육이 아니면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빠르게 변신하는 대학, 오직 육영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재벌이 인수하는 대학, 한가지 분야에 집중, 고도의 전문성을 가지는 대학들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지극히 바람직한 일이기도 하다. ‘킬빌 1,2’ 는, 오락영화 로서는 특이하게 만들어진 아주 재미있고 유쾌하게 볼수있는 영화다. 이 영화를만든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Quentim Tarantino)는, 미국 테네시주의 녹스빌에서 1963년에 태어났다. 북미 남동부 애팔레치산맥 남부에 거주, 인디언중 유일하게 음절문자를 가지고 있던 체로키(Chrokee) 의 피가 섞여있는 인물이다. 그는 감독이지만 배우들 이상의 인기를 가지고 있다. 얼마전 한 언롤사 기자와의 인터뷰가 있었던바. 그중 한 대목을 보면, -당신은 영화공부를 따로 한적이 없다는것 때문에 불리한적은 없었는가. -그런적은 없다. 그게 바로 할리우드의 재미있는점 이기도 한데, 이곳은 골드러시때와 비슷해서 누가나 어디서나 올수있다. 자신의 능력을 입증만 하면된다. 어떤학위도 그 사람의 능력을 증명해 주지는 않는다. 당신의 결과로만 당신을 말할수 있다.
학력(學歷) 이 아니라 실력(實力) 만이 통한다는 얘기다. 우리가 실력이 아니라 ‘학벌’ 을 따지는 동안, 400개가 넘는 대학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84%의 진학률이 거대한 백수군(白手郡)을 만든것이다. 이제 간판이 통하던 시대는 분명히 끝나가고 있고 또 끝내야한다. ‘실력을 입증 하는자’ 만이 살아남는 것이다. 그게 어떤분야든 ‘최고의 전문가’ 만 되면 성공은 보장된다. 돈은 그 뒤를 따라오게 돼 있다. 정확히 대학졸업생의 절반이 백수가 되는 구조적현실을 똑바로 보고 자기의 진로를 결정해야 한다. 진정, 학부모들의 책임도 거기에 있다. ‘좋아하고 잘 하는것’ 그걸 잡고 나아가면 확실하게 성공한다. 그게 없는사람은 하나도 없다. 발견되지 못하고, 계발되지 못한채 사장되는 경우만 있을뿐이다. |
얼마전. 사회학 분야를 전공하는 학자들의 토론모임이 있었다. 그것은 이미 고유한 전통에서 크게벗어난 현대 한국사회의 ‘공동체적 위기’ 의 핵심적인 내용을 도출해 보려는 시도로서의 학구적 탐구를 위한것이었다. 오랜시간 저마다 발제와 설명, 그리고 진지한 토론이 있었지만 유감스럽게도 결론에는 이르지 못했다. 결론의 학문적 도출에 실패한 것이다. 비로서 참가자들은 우리가 가지고있는 ‘위기’ 의 깊이가 생각보다 깊고 넓다는것을 실감했고, 그것이 어떤 간단한 도식으로 함축할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성과가 있었다면, 지금 우리사회의 위기는 지금까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어떤 ‘틀’ 로는 정의할수 없다는 것이며 그것은 그만큼 심각하고 위험한 수준에 육박해 있다는 발견이었다. 학자들이 이렇다면 보통사람들이야 더 말할것도 없겠다.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성찰할수 있고 내일을 예측해 낼수있다. 어제와 오늘을 반드시 비교해야 하는 당위는 사실 절대적인 과제이기도 하다. 지금의 우리 사회공동체는 현재만 있을뿐 과거가 희박하고 내일은 생각지도 않는다. 학자들이 모여 ‘위기’ 의 내용을 도출해 내지 못한것은 지금의 위기가 과거와 미래에 대해 연계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역사가 중요한것은 오늘과 내일 때문이다. 오늘만 있는 사회는 성숙해 질수가 없다. 어제라는 ‘바탕’ 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의 사회공동체가 정상적으로 발전해 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제를 알아야 하고 그 바탕에서 내일에 대한 예측을 바르게 할수있어야 한다. 지금은 모두가 오늘만 살것처럼 뛰어다니고 있다. 무엇 때문에 바쁜지도 모르는채 빨리빨리 살고있다. 그래서 위기는 더 커지는 것이며 그것이 파악도 안된채 점점 우리의 생활을 벼랑 으로 몰아가고 있는것이다.
사람이 다른사람을 향해 ‘안녕하세요?’ 하면 그게 인사다. 인사는 人事다. 사람이 마땅히 해야하는 일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인사는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인간관계’ 다. 결국 모든 사회공동체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로 형성되는 조직이기에 그렇다. 더 부연해 설명하자면, 사회는, 사람이 다른사람을 ‘배려’ 하는 관계에서 출발하는 인간조직이다. 배려하고, 배려받는 관계, 그게 인사다. 개성적인 것과 이기적인 것이 다른게 그 이유다. 배려의 반대가 해(害)를 입히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공동체는 이를 제어하기위해 모두의 약속인 ‘법’ 을 만든것이며 다른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인간에 대해 법으로 제재하게 된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크게 정착된 사회가 선진사회이며, 그 반대가 후진사회다. 그리고 타인에 대한 배려는 강제에 우선해서 ‘교육’ 으로 형성되는 문화적인 정서이기도 하다.
나는 연령적으로 어제와 오늘을 비교할수 있는 구세대다. 그리고 오늘을 성찰하면서 내일을 예측해 볼수있는 나이이기도 하다. 어제는, 그게 본래 우리의 모습이기에 아주 중요하다. 어제를 알면 오늘의 변화가 가지는 내용이 발전인지 타락인지 가늠할수 있다. 그래서 이미 언급했던 얘기를 다시하려고 한다. 1950년 6.25 전쟁때, 엄친께서는 전투에 참가했고, 자당과 우리 삼남매는 시골로 피난, 아무 연고도 없는 시골농가에 얹혀살았다. 큰 부락은 아니었지만 그댁은 제법 농사가 컸고 사람들도 무던했다. 어느날 그집에 먼곳에서 손님이 왔고, 논에서 일하고있는 주인에게 그 소식을 전하기 위해 나는 뛰어갔었다. 서둘러 집에 돌아온 농부는 먼저 얼굴과 손발을 깨끗하게 씼은후 방에 들어가 두루마기까지 갖춘 한복으로 갈아입고 사랑으로 나갔다. 그 다음장면을 나는 평생 잊지못한다. 그렇게 강열하게 뇌리에 각인된 것이다.
사랑방에서, 주인과 손님은 서로 마주선후, 정중하게 엎드려 맞절을 했다. 그건 정말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그리고 서로가 상대방 가족에 대한 안부를 물었다. 그 손님은 집안의 혼사문제 때문에 온것 같았으며 두 사람은 오랫동안 신중한 자세로 얘기를 나눴다. 특별히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도 아닌, 평범한 시골의 농부들 이었지만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기본에서 그들은 예의(禮儀)가 분명했다. 그때의 우리사회가 그러했기 때문이다. 예의가 무엇인가. 사회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이 함께 지켜야할 인사-예절이다. 예의는 남에게 폐(幣)가 되거나 실례가 되지 않으려는 마음가짐이며 자세다. 그래서 예의-예절이 분명한 사회는 빈부의 문제를 떠나 모두가 ‘안정적’ 으로 살아갈수 있다. 상대적인 배려가 모든사람을 감싸안고 있기대문에 ‘불안’ 이 없는것이다. 우리의 어제가 그러했다. 그래서 우리를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 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내가 자라면서 가장많이 들었던 말은, ‘겁이 없다’ 는 것이었다. 실제로, 갑자기 큰 소리가 나거나 가까이에서 무엇이 무너지는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놀래고 소리까지 지른다. 그럴때, 나는 이상하리만치 침착해지고 더 냉정해진다. 그건 아마도 타고난 성품일것이다. 그런데, 요지음 나는 겁이나고, 무서운 일들을 자주 만난다.그래서 가급적 외출을 삼가려고 한다. 은퇴생활을 하기 때문에 내가 싫으면 외출을 안 할수도 있다. 현역이었을때는 내가 싫어도 해야할 일이 있으니 피할수 없었지만 지금은 선택 할수 있기 때문에 두려운 일들과 마주치지 않으려는 것이다. 내가 느끼는 두려움, 겁나는 일들은 어떤 특정한 개인이나 조직에 대한것이 아니다. 예의가 붕괴된 자리에 독버섯처럼 솟아난 사람들의 ‘무례(無禮)함’ 이 그것이다. 함께 살고있는 사람들의 ‘사회적분위기’가 두렵고 무섭다. 너무 각박하고, 살벌하고, 전투적이고, 무례하다. 풍선과 송곳끝처럼 첨예하고, 칼끝이 부딪히는 날카로운 소리로 가득차 있다.
내 친구들이 자주 내게 하는말이 있다. ‘관찰력이 예리하고 기록성이 뛰어나다’ 는 것이다. 사실 내게 그런면이 있는것이 사실이다. 어떤면에서 나는 ‘독서광 이자 메모광’ 이기도 하다. 메모용 카드와 필기구는 항상 지참하고 다니는게 습관이다. 그리고 그게 어디든 관계없이 필요하다면 현장에서 메모한다. 때문에 지금처럼 많은 글을 쓰면서도 풍부한 자료들을 가지고 있는것이다. 그렇게 기록했던 자료중에서 이제 소개하려는 에피소드들은 지금의 ‘위기’ 를 설명할수있는 현실적인 방편이 될수있을것이다.
우리가 살고있는 아파트의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서, 바닥에 음식물쓰레기의 국물이 흘러서 보기에도 좋지않고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경우가 잦았다. 그러던 어느날 현장에서 장 본인을 보게됐다. 젊은주부가 들고있는 음식물쓰레기 그릇에서 고약한냄새의 국물이 계속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그런데, 본인은 완전 무표정이었다. 그 뻔뻔한 얼굴은 인간의 얼굴이 아니었다. 모두가 함께 쓰는 공공재(公共財)를 더럽히면서도 그게 왜 잘못인지를 모르는, 더불어 함께 살수없는 인간형이 그랬다. 얼마나 두렵고 무서운 얼굴인가. 그것은 이웃이 아니라 단지 두려운 존재일 뿐이었다.
대중음식점은 대표적인 공공의 공간이다. 서로가 상대방을 특히 배려해야 하는 ‘식사하는 장소’ 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리 넓지도 않은 식당안을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는 애들이 있다.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건드리게 되고 달리다 넘어져 울기까지 한다. 그런데도 애들의 젊은부모는 그 망종들을 전혀 제어하지 않는다. 또, 어떤 아낙들은, 의자위에서 책상다리를 하고앉는다. 그래서 누군가는 그 더러운 발바닥을 봐야한다. 그런 자세로 앉으면 반드시 누군가는 식사하면서 그 발바닥을 보게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다. 방석에 앉아야 하는 식당에서, 새 일행이 들어왔을때 멀쩡하게 생긴 사람들이 식탁밑의 방석들을 꺼내 건너편 일행이 앉을자리에 던져놓는다. 옆에서 이미 식사하고 있는 사람들까지 그 먼지를 마셔야하는데 그게 왜 나쁜지를 모르는 것이다. 나는 정말 이런 사람들이 두렵고 무섭다.
어느날 아침, 주차공간에서 시동을 건후 밖으로 나가기 위해 출발했지만 곧 그 자리에 서고 말았다. 내 앞에 승용차 한 대가 서 있었고 운전자는 창문을 내리고 차옆에 선 사람과 얘기하고 있었다. 내 생각엔, 그리고 내 기준으로는 곧 얘기를 끝내고 그차가 출발할줄 알았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얘기는 끝없이 계속되었고, 나는 기다릴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긴 얘기가 끝나고 차가 출발하면서도 미안하다는 어떤 표시도 없었다. 뒤에서 오래동안 기다리는 타인의 차는 안중에 없는것이다. 더 심한 경우는, 자기가 편하기 위해 간선도로의 횡단보도에 차를 세우고 볼일보러 가는 경우도 있다. 어떤 경우엔 진행하다 도로 중앙에 차를 세우고 사람이 내릴때도 있다. 다른차, 다른사람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타인은 그 안중에도 없는 이런 원시인들이 나는 두렵고 겁난다. 정말 그들은 칼을 든 강도보다 더 두렵고 무서운 존재들이다.
병원의 환자대기실. 요지음은 병원마다 경쟁이 심해 대기실의 의자도 고급화 됐고 분위기도 좋은 편이다. 그런데 몸이아파 진찰순서를 기다리는 대기실에서 10분에서 20분 이상 큰 소리로 휴대폰 통화를 하는 무지하고 무례한 사람들이 있다. 어떤 환자는 견디다 못해 자리를 뜨기까지한다. 그 통화내용도 ‘잡담과 수다’ 수준이다. 그런 인간들은 다른 사람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 장애가 있는 사람들 이다. 세상에 자기만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망종이 되는것이다. 모두가 자기차례를 기다리는 긴 줄을 보면서도 새치기 하는 사람들, 차선을 바꾸기 위해 신호를 넣어도 절대 공간을 내 주지않는 꼬인사람들. 익명성 이라는 성채뒤에 숨어 온갖 악담을 쏟아내는 악플들. 실내용 슬리퍼를 끌고 거리로 나서는 무지하고 천박한 여자들, 그리고 그들이 계단에서 내는 귀를찢는 소리들, 모두가 함께 살수없는, 남에게 해악을 끼치는 무섭고 두려운 반사회적 존재들인 것이다.
그런데, 그들 한사람, 한사람을 개인적으로 만나보면 나쁜사람이 거의없다. 착하고, 정이많고, 이해력도 빨라 말귀를 쉽게 알아듣는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못쓰게 만들었는가. 사람과 사람사이의 인사하는법, 예의와 배려를 배워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입도구과목인 국,영,수 에 매달려 있는동안 ‘인간’ 이 되기위한 도덕, 윤리교육을 받지 못한것이다. 배우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수 있겠는가. 나쁜줄 알면서 일부러 나쁜일을 하는 사람은 없다. 있다면 그건 범죄자일 뿐이다. 더 무서운것은, 그들이 가정에서 키우는 다음세대들이다. 십중팔구 상황은 지금보다 더 나빠질 것이다. 더 무섭고 두려운 사회가 될것이며 그런 사회에서 인간이 어떻게 인간적으로, 인간답게 살수 있겠는가.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해 지는일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진정한 위기가 바로 그것이다. 경제가 아무리 발전해도 인사-人事 가 없으면 그게 정글이다. 과연 누가 이일을 바로잡을 것인가. 그래서 국가리더십이 절실한 때가 바로 지금이다. 이미 소는 잃었지만 다음세대를 위해 외양간을 고쳐야 하기 때문이다.
2005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인구의 228%인 1.073만여명이 불교도 이며, 18.3%인 863만여명이 개신교 신자다. 그리고 10,9%인 515만여명이 로마카톨릭이다. 실로 전체인구의 52%가 종교를 가지고 있는셈이다. (2005년 이후의 자료는 부풀린 부분이 많기 때문에 신뢰할 수가 없다.) 그 종교들이 살아있어 순기능을 했다면 지금의 우리사회가 이 지경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발복(發福) 과 기복(祈福), 그리고 엄격한 조직의 냉담함으로 미신화되고 변질 되었기 때문에 그 기능이 죽어버린 것이다. 짠맛을 잃은 소금이 되어 길에 버려진채 사람들에게 짓밟히고 있는게 지금의 한국종교다. 종교가 그 본래의 순기능을 다 한다면 우리사회는 달라질수밖에 없다. ‘대자대비’ 와 ‘사랑’ 은 곧 다른사람에 대한 ‘배려’ 이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먼저 종교지도자들이 대오각성하고 회개해야 한다. 우리의 사회공동체가 이대로 가서는 절대로 안되기 때문이다. |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지네딘 지단(Zinedine Yazid Zidane 1972.6.23) 이 누군지는 다 알고있을 것이다. 1998, 2000, 2003년 FIFA(국제축구연맹) 가 선정하는 ‘올해의 선수상’ 을 연속 수상한바 있으며, 유럽축구연맹이 선정하는 ‘50년 역사상 최고의선수’ 로 뽑히기도 했다. 미드필더의 포지션을 가지고 있는 지단은 세계 정상의 선수로서 그 시야가 넓고, 패싱이 정확하며, 빠른 스피드와 현란한 드리볼로 축구팬들을 열광시켰다. 그의 은퇴후 그라운드에서 그를 보지 못하는 아쉬움은 모든 팬들의 한결같은 마음이기도 하다. 그는 축구의 아티스트였으며 21세기 축구황제로서 모자람이 없었다. 축구에서 다시 그만한 선수가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그가 떠난 자리는 더 크게보인다.
지단은 프랑스의 남부 항구도시 말세이유에서 출생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독학으로 축구를 배웠다. 그러나 그의 뛰어난 재능이 인정되어 1998년 프랑스의 1부리그 칸에서 프로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1990년 프랑스 청소년대표팀에 선발되었으며, 1992년 프로선수로서 뛰어난 기량을 보여 FC지롱댕 보르도팀으로 이적한다. 1994년 프랑스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었으며 같은해 신인선수상을 받았다. 1996년 이탈리아의 유벤투스로 옮겼으며 2001년 스페인의 유명한 레알마드리드로 이적했다. 레알 마드리드의 기라성같은 선수들 사이에서도 그의 존재는 뚜렸했으며 침착한 자세로 공을 적재적소로 배급하던 그의 놀라운 기량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는 진정 21세기 ‘축구의 황제’ 였다.
마르세이유에 정착한 가난한 그의 부모는 알제리 출신의 이민자들 이었다. 평소 지단이 알제리에 대해 나타낸 관심과 애정은 그의 뿌리가 알제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모로코, 알제리, 튀지지, 리비아는 아프리카 북서부에 위치해 있으며 이들 나라들을 묶어 ‘마그레브-Maghreb' 라고 부른다. 리비아는 이탈리아의 식민지 였으며,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는 프랑스의 식민지와 보호령이었다. 마그레브지역과 사하라이남의 아프리카는 전혀 다른세계다. 지금도 마그레브 지역을 여행해 보면 유럽이 남긴 큰 족적을 여기저기에서 만날 수 있다. 예를들어, 카사불랑카의 호텔에 투숙한후 아침식사를 하기위해 대리석이 깔린 화려한 식당에 내려가면 한 테이블에 두명의 아름다운 모로코 여종업원들이 유창한 프랑스어를 구사하며 자상한 서브를 제공한다. 흡사 왕족이 된 기분이다. 더 재미있는것은 같은 나라인데도 지브랄탈해협이 가까운 북쪽지역에 가면 스페인어가 등장하는 사실이다. 역사는 그렇게 재미있다. 탕 헤르에서 훼리를 타고 해협을 건너 알제시라스에 올라서면 바로 그라나다가 있는 안달루시아가 아닌가. ‘안달루시아를 보기전에는 눈을감지말라’ 유럽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지금의 알제리는 1962년에 독립했으며, 국토가 238만여 평방키로로 이집트보다 크다. 모로코와 튀니지 사이에 위치한 알제리는 지중해에 면해 있으며 베르베르인이 99%인 아랍국가로서 대부분이 수니파무슬림들이다. 2008년기준 인구는 3.376만여명이며 1인당 GDP는 3.825달러, 평균수명 73.7세다. 비록 독재와 부패가 있다해도 사하라이남 아프리카의 여러나라들과는 비교할수 없이 풍요로운 나라다. 알제리는 1830년부터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으며 1954년 민족해방전선(FLN) 을 중심으로 8년간 프랑스와 격열한 알제리전쟁을 벌인 끝에 독립했다. 실로 132년간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것이다. 지금도 프랑스에 알제리인이 많은것은 이런 관계 때문이다. 말하자면 지단도 알제리계 프랑스인인 것이다.
알제리가 132년간 프랑스의 식민지가 된것은 ‘파리채’ 때문이었다. 1827년 4월의 어느날, 당시 알제리는 오스만 터키의 지배를 받고있었으며 술탄이 임명한 ‘파샤’ 가 지배자였다. 그 직책을 ‘데이-dey' 라고 불렀다. 그날, 알제리의 ‘데이’ 인 ‘후사인’은 마침 프랑스 영사를 접견하고 있었다. 지금은 그 내용을 알수없는 대화 때문에 크게 화가난 후사인은 파리채로 프랑스영사를 세 번이나 후려친 일이 벌어졌다. 크게 모욕감을 느낀 프랑스정부는 즉각 알제리에 함대를 파견했으며 사과와 보상을 요구했다. 아무리 오스만터키가 뒤에 있다해도 후사인은 사과하는게 옳았다. 그러나 그는 이 요구를 일거에 거절했다. 이에 프랑스정부는 영사와 프랑스거류민 모두를 배에 태운후 수도인 알제항을 봉쇄했으며, 서쪽으로 32킬로 떨어진 ‘시디페르루크’에 육군을 상륙시켰다. 해군은 바다에서 대규모 포격을 시작했으며 육군이 이에가세, 단 며칠만에 수도알제는 함락되었으며 이로서 132년간에 걸친 프랑스의 식민정치가 시작 된 것이다. 파리채 때문에.
이번 추석을 지내면서 한복을 차려입은 어른들을 거의 보지못했다. 애들은 더러 봤지만, 해마다 한복을 입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는게 사실이다. 제대로 갖추어입은 한복은 아름답고 우아하고 품위가 있다. 근자에는 너무 요란한 무늬와 색깔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고, 개량한복도 있지만 전혀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 10여년을 미국인들과 생활하면서 살펴본 바로는 그들 대부분이 한복에 매료 되어 귀국할때는 자기가 입을 한복 한 벌씩을 준비하는게 보통이었다. 특히 우리의 고 가구에 매료된 미국인들도 많았다. 그들이 가지고있는 고 가구에 대한 애착은 한국인들 보다 더 했다. 진품은 반출이 안되기 때문에 모조품을 사 가지고 가는이들도 많았다. 이상한것은, 한복과 국악이 대중화되지 않고있는 점이다. 한복은 우아하고 아름다우며 우리의 국악은 더 없이 청아한 음악이다. 그런데도 이 두가지는 대중화, 일상화 되지못하고 있다. 가장 현실적이고 쉬운대답은, 한복은 불편하며 만들기가 까다롭고, 국악은 재미가 없기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이 서양식 복장을 선호하는것은 유행보다는 그 실용성, 편리성, 효율성 때문이다. 한복을 입고는 지금과 같은 스피디한 시대를 살수가 없다. 똑같이 서양음악이 국악을 밀어낸것도 재미에서 앞서기 때문이다. 아무리 국가적인 차원에서 국악육성을 시도해도 대중화 되지 못하는게 그 때문이다. 섭섭하지만 현실은 그렇다. 그런데, 최근 미국의 건강전문지 ‘헬스’ 가 선정한 세계의 5대 건강식품에 우리의 김치가 포함됐다. 스페인산 올리브오일, 그리스의 요구르트, 일본의 두부, 인도의 덴틸콩, 그리고 우리의 김치가 그것이다. 2가지는 발효식품이고, 3가지는 아시아식품이다. 우리의 김치가 세계 모든나라 식탁에 오를날도 머지않았다. 그리고 김치는 중독성식품이기 때문에 그 다음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LG에서 연구원장을 지냈으며, 전경련 부회장을 지낸후 지식경제부 장관을 지낸 이윤호씨가 장관직을 물러난후 한 얘기가 있다. 마음을 비우고, 생각을 단순하게 하고, 느리게 행동하는 세가지일에 집중하겠다는게 그것이다. 마음을 비운다는게 무엇인가. 사람들 마음속에 가득차 있는게 무엇인가. 탐욕-욕심이다. 과식하면 괴롭듯이 마음속에 잡것이 가득하면 병이된다. 그래서 그것들을 다 끄집어내 버리고 홀가분해 지겠다는 것이다. 본래의 자기로 돌아가겠다는 얘기다. 생각을 단순하게 한다는것은 무엇인가. 단순해 진다는건 어떤 한가지에만 집중하겠다는 뜻이다. 그동안 매달려있던 온갖 잡것들을 다 동댕이쳐 버리고 한가지만 생각 하겠다는 것이다. 그게 무엇이 겠는가. 자기의 근본을 생각하는 것이다. 뿌리만 생각하는 것이다. 체중은 줄지만 정신은 더 맑아지는게 그런것이다. 느리게 행동하겠다는 것은, 그동안 뛰기만 하면서 바쁘게 살았다는 뜻이다. 본래의 자기속도, 패이스를 되찾겠다는 다짐이다. 본래의 ‘자기’ 로 돌아가겠다는 얘기다. 모두가 바쁘다, 바쁘다 하면서 빨리 빨리 살고있지만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는 모르고 있다. 슬쩍 그 대열에서 빠져나와 천천히 걸어보면 그 이유를 알게된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느리게 걸어보는 시간도 절실하게 필요하다. 왜 가끔 심호흡을 하겠는가.
서화숙씨는 22년간의 아파트생활을 청산하고 단독주택으로 이사했다. 편리함에서 불편함으로 스스로 옮겨간 것이다. 그는 최근 ‘마당의 순례자’ 라는 책을 썼는데 거기에 이런 대목이 있다. ‘단독주택이 좋은것은, 나와 남이 다르다는 점이다. 똑같은 집에살면 사람들은 자꾸 그 내용을 비교해 보게된다. 단독주택은 처음부터 다르다는 것에서 출발하니까 나는 나일뿐, 남과 비교하려 들지않는다. 이게 얼마나 사람을 건강하게 하는지 겪어봐야 안다.‘ 정말 가슴에 와 닿는 얘기다. 서화숙씨는 용감하게 토끼장을 탈출한 것이다.
2009년 9월현재, 우리나라의 전체가구수는 1.691만 6.966가구다. 이중 절반이상이 아파트에 살고있다. 1958년 11월, 중앙산업이 성북구종암동 고대옆 언덕에 지은 ‘종암아파트’ 가 한국 최초의 수세식 화장실을 갖춘 아파트다. 그리고 5.16 혁명후, 주택난 해소를 위해 박정희 대통령이 주택공사에 지시해 지은 6층단지의 아파트가 ‘마포아파트’ 다. 단지형 아파트의 효시다. 불과 50년, 두세대도 안되는 짧은기간에 전국가구의 절반이상이 아파트에 살고 있는 기록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 정말 대단한 민족이 아닐수 없다. 외국인 관광코스에 일부 여행사가 일산의 아파트단지를 포함 시킨것은 세계 어디에도 그런곳이 없기 때문이다. 충분히 구경거리고 될 수 있고, 관광상품도 될수있다. 앞으로 아파트는 크게 두가지 종류로 진화된다. 한쪽은 더 고급스러운 주거공간으로 발전, 가진자들의 게토가 될것이고, 다른한쪽은 슬럼-slum 이 되는것이다. 그게 정해진 코스다. 무너지기 직전의 와우아파트를 연상하면 된다.
삶의 껍데기-형식-값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고, 삶의 안-질-가치를 지키려는 사람은 아파트를 떠날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게토에 갈 자신이 없다면 더더욱 그렇다. 아파트, 특히 그 획일적인 거실의 구조가 TV를 군림하게한 상업주의에서 벗어나야 ‘나’ 를 찾을수 있다. 서로 다르게 생겼듯이 서로다르게, 개성적으로 살아야 하는게 인간-인생이 아니겠는가. 가을은, 그래서 많은생각을 하게되는 계절이기도 하다. |
서울에서는, 자기차를 운전하고 다니는 외국인을 볼수가 없다. 그 대답은, 선진국에 가서 차를 빌려타고 여행해보면 알게된다. 문명-文明 으로서의 자동차는 함께 가지고 있지만 그 차를 운용하는 운전질서, 교통질서인 문화-文化에서 큰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한쪽이 교통질서가 이미 자리잡고 있다면 다른한쪽은 아직 정글의 수준이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자신있게 운전할수 있는 사람도 카이로에서는 운전할수 없다. 거긴 더 원시적인 정글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남북을 관통하는 영국의 고속도로 에서는 외국인인 초보운전자도 안심하고 자동차를 운전할수 있다. 끼어들기, 과속, 무모한 앞지르기등의 난폭운전이 없기 때문이다. 120키로의 속도지만 모두가 물 흐르듯이 정연하고 차분하게 운전하고 있다. 모든 도로에서 그렇다. 이건 남에게서 들은 얘기가 아니라 내가 직접체험한 일이다. 랜트카로 영국을 일주한후 내린 결론이 그것이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것일까. 선진국의 자동차문화는 이미 3.5세대다. 우리는 지금 1.5세대를 겨우 넘기는 중이다. 자동차라는 문명이 등장한 이후 그들은 100년이 넘는 긴 시간동안 온갖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오늘의 운전질서-교통문화를 일구어왔다. 반면 우리는 걸어다니던 사람들이 겨우 버스라는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던 세대가 갑자기 자가용승용차를 가지게 됐다. 내가 초등학생 이었을때, 우리집에는 엄친의 일본제 커다란 자전거가 있었다. 그때는 자전거가 있는집도 드물었다. 중, 고등학교 시절엔 그게 어디든 걸어서 다녔다. 대학생이 되어 전차와 기차를 이용했으며 그때 시내버스가 등장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간 후에는 회사가 제공하는 통근버스를 이용했다. 과장이 되었을때 처음으로 일제의 ‘브리사’ 승용차를 구입했다. 그게 1974년. 지금 우리집 승용차는 그후 7번째 바뀐것이다.
영국은 모든차량이 좌측통행하고, 운전석은 오른쪽이다. 때문에 변속레버는 왼손으로 조작해야 한다. 영국에 가서 운전해야하는 우리들 에게는 대단히 불편하고 위험하기까지 한 일이다. 그러나 그런 시스템에는 영국의 오래된 교통문화의 시대적 전통이 배어있다. 그들에게는 자동차 이전 ‘마차’ 라는 운송수단이 있었으며 그게 대중교통수단 이었다. 마부는 오른쪽에 앉아 말들을 부렸으며 특히 오른손에 긴 채찍을 들고 휘둘렀다. 자나다니는 행인들에게 피해를 주지않기 위해 마차는 좌측통행을 했다. 그 전통이 그대로 자동차에 남은것이 지금의 영국교통체계다. 일본이 그 흉내를 내고있는것은 가소로운 일이다. 미국에 비해 유럽의 길들은 좁은편이다. 마차들이 다니던 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럽은 작은차 생산에 앞설수 있었으며 산악지대의 좁은도로를 달릴수 있는 뛰어난 성능의 엔진과 유선형의 차체개발에 앞설수밖에 없었다. 디자인, 크기, 성능, 연비에서 미국을 앞서는 자동차문화가 만들어진 배경이 그것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그런 문화적 전통이 없기 때문에 일대 혼란을 겪고있는 것이다.
내년 11월이면 우리나라에서 G20 정상회의가 열린다. 단군이래 최대규모의 ‘국제회의’ 다. 겪어보면 알겠지만 88올림픽에 비견할만한 ‘계기’ 가 될수있다. 그래서 벌써부터 나라의 품격을 업 그레이드 해야 한다는 얘기들이 나오고있다. 한 가정도 큰일을 치르려면 치밀한 준비가 있어야 하고 과정마다 여러 가지 고비를 겪으면서 행사가 끝났을때는 상당한 ‘발전’ 이 있었음을 실감할수 있다. 나라도 마찬가지다. 벌써 정부차원의 준비는 시작되었을 것이다. 20개의 선진국 정상들이 한자리에 모인다는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다. 따라오는 사람들, 그들에게 제공해야하는 숙박시설들, 회의장, 정상회의 세련된 진행, 의제의 선택과 결실등, G20은 대한민국이 얻어낸 최고의 국제적 ‘찬스’ 라고 할수있다. 대내적 으로도, 대외적 으로도 그것은 놀라운 기회가 될수있다. 그래서 지금의 우리수준을 되 돌아볼 현실적인 필요가 있다.
1960-70 년대를 ‘압축성장의 시기’ 라고 부른다. 특히 나는 개인적으로 이 기간동안 철강회사에 근무하면서 그 소용돌이를 몸으로 체험한 세대다. 고생도 자심했지만 보람도 그만큼 컸던, 한국이 경제적으로 웅비하는 기간이기도 했다. 압축성장이 무엇인가. 압축(壓縮)은 압력을 주어 부피를 줄이는것이며, 문장을 줄여 짧게하는 것이다. 따라서 압축성장은, 필요한 만큼의 여러과정들을 생략한채 건더뛴, 빠른성장을 의미한다. 세상에 공짜가 없는것은, 지금 우리사회가 겪고있는 온갖 혼란은 뒤늦게 그 건너뛰었던 과정들을 채우느라 지불하는 대가라고 봐야한다. 두발로 걸어다니던 사람들이 ‘마차’ 라는 과정없이 자동차를 탄게 그런것이다. 나쁘다는게 아니라 ‘부족’ 했다는 뜻이다. 필요한 단계가 생략됐다면 지금 그 단계들을 다시 밟느라고 일대 혼란과 진통을 겪고 있는것이다.
압축성장은, 반드시 그에 따르는 후유증(後遺症)을 남긴다. 후유증은, 어떤 일을 치르고 난 뒤에 생긴 여러 가지 부작용을 이르는 말이며, 부작용(副作用)은 어떤 약이라 해도 병을 낫게하는 작용에 곁들여 해로운 작용도 나타나는 것이다. 예를들어 진통제가 식욕부진을 일으키는게 그런것이다. 부작용은 어떤일에 곁들여 일어나는 바람직하지 못한일에 대해서도 쓰이는말이다. 쉽게말해, 압축성장은 성장후의 결과에서 부작용이 있다는 뜻이다. 모든과정을 제대로 다 거친 성장은 그 결과가 안정적이고 효율적이다. 그러나 압축성장은 물량이 내용을 앞서기 때문에 문화적 부작용을 낳게된다. 문명이 문화로 자리매김 하지 못하는 현상이 그것이다. 우리사회의 온갖 ‘상스러움-천박함’ 이 바로 그 핵심적인 내용들이다. 대표적인 것이 졸부들의 ‘천민자본주의’ 임은 말할것도 없다.
모든 선진문명국들은 전통적으로 그것을 떠 받치고있는 세 개의 큰 기둥을 가지고 있다. 곧 정치에서의 자유민주주의와, 경제에서의 자본주의 시장경제, 그리고 사회공동체를 유지케 하는 법질서가 그것이다. 정치체제의 중요성은, 북쪽의 1인독재의 전체주의와 우리의 자유민주주의에서 이미 분명한 결판이 났다. 인간의 기본권이 유린된 체제가 발전할수는 없다. 선군정치(先軍政治)를 외치는 병영국가의 국민은 모두가 포로일 뿐이다. 우리는 이미 오래동안 충분히 그들의 신음소리를 듣고있다. 그래서 우리들이 누리는 자유와 풍요로움이 상대적으로 어떤것인지 체험적으로 알고있다. 미국의 의회조사국(CRS) 은, 2008년 북한의 수출이 28억불 이라고 밝혔다. 같은해 우리는 4,000억불, 비교자체가 무의미한 수준차다. 전체주의계획경제와 자본주의시장경제의 차이는 더 긴 설명이 필요없다. 아무리 반시장, 반기업, 반자본주의 정서가 있다해도 우리가 이만큼 잘살고 있는것은 자본주의시장경제를 채택한 결과인 것이다. 이승만의 ‘선택’이 존경받아야 하는 이유도 그것이다.
그러나 ‘법질서-준법정신’에서 우리는 낙제점이다. 불법, 편법이 판치는게 지금의 우리사회다. 입법부인 ‘국회’ 부터가 세계에서 가장 폭력적인 의회로 낙인찍혔다. 그들의 ‘무법천지’ 는 전국, 전국민을 크게 오염시켰다. 여기에 더해, 지난 반세기동안 압축성장과 투쟁적인 민주화과정을 거치면서 법질서 자체가 크게왜곡된 측면이 강하다. 정부주도의 압축성장을 거치면서 거기에 참여, 많은 이득을 보는 자들과 소외된 계층이 발생했으며, 법과 공권력이 그들의 편이라는 편견이 널리퍼졌다. 따라서 법을 지키지않고 오히려 그것을 공격하는것이 정의와 민주화 운동으로 포장되었으며 이로서 불법, 편법, 범법이 국민의 일상이 되고말았다. 특히 1980년대의 민주화운동은, 극단적인 좌파, 직업적인 운동권, 낙오한 노동자들이 주도했으며, 그뒤 친북좌파의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민주화와 인권문제는 이들이 ‘독점’ 하는 불상사가 생겼다. 그들의 이념, 구호, 불법집단행동에 대해 비판하면 무조건 독재, 반인권, 반민주세력 으로 타도의 대상이 되었다. 참으로 무섭고 두려운 독선의 시절이었다. 이성(理性) 과 분별력(分別力), 그리고 제3의 생각이 설 자리가 없는 무지와 독단의 시대이기도 했다.
그 후유증이 지금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부작용을 낳아 일대 사회적인 혼란이 일어나고 있는것이다. 압축성장과 폭력적민주화운동은 그 상승작용으로 지금의 우리사회를 만인이 만인을 향해 쟁투하는 갈등하는 사회를 만들었다. 그동안 모든 대형시위와 집회에서, 공권력-경찰이 공격받은것은 법질서의 붕괴가 어느수준 인지를 알게해 줬다. 질서는 차례다. 그리고 법질서는 그 차례를 법으로 지키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긴 줄에 거침없이 새치기가 끼어들고, 공권력-경찰이 그 횡포를 막지 못한다면 그게 바로 ‘무법천지’ 다. 지금의 우리사회가 그 꼴이다.
개인의 가정이라해도 귀한 손님을 맞기위해서는 준비를 한다. G20의 정상회의는 우리가 스스로를 돌아보고 우리 사회를 한단계 업 그레이드 시킬수 있는 절호의 주어진 기회다. 우선, 유권자의 힘으로 ‘무법,폭력 국회’ 를 엎어야 한다. 지금의 국회는 우리의 정치발전을 가로막고있는 커다란 거침돌일 뿐이다. 다음 총선에서 전부 새 사람을 뽑는것이 우선은 최선의 방법이다. 다음이 우리모두가 준법정신으로 ‘법질서’ 를 확실하게 세우는 일이다. 거의 평생을 가까이 지내고 있는 미국인 친구가 내게 한 말이있다. 그는 30년이상 한국에서 살았던 사람이기도 하다. ‘미국국민들이 법을 잘 지키는것은 사실이다. 확실히 한국사회보다는 법질서가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이 미국사람들이 한국사람들 보다 착하거나 더 정직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그건 착각이다. 착하고, 성실하고, 정(情) 많기로 말한다면 어떤 나라도 한국을 따라올수 없다. 차이는 단 한가지, 미국에서는 법을 어기면 그 처벌이 아주 가혹하다. 개인적으로 불이익이 크고, 경제적으로도 크게 손해가 되고, 신체적 으로도 부자유해 진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보면 한국은 법을 어겨도 처벌이 너무 느슨하다. 그러니 자꾸 법을 어기게 되는것이다. 손해도 별로 없는데 누가 그 불편한 법을 지키려고 하겠는가.‘
흉기를 들고 공권력-경찰을 공격하고도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나라에서 법질서 확립은 요원한 얘기다. 시민들에게 법을 지키라고 말하기 전에 법을 어겼을경우의 처벌부터 강화해야 하는 소이가 거기에 있다. 하나의 사회공동체가 모두가 편하게 사는길은 ‘법질서’ 를 세우는 길이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이다. ‘법’ 이 모두의 ‘약속’ 이라면 전체를 위해 약속-법을 어긴 범법자는 가혹하게 다뤄야 한다. ‘법’ 이 무서우면 ‘법질서’ 는 저절로 세워진다. 압축성장과 폭력적민주화운동의 후유증을 치유하는 길이 그 안에 있음을 이제는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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